[오늘과 내일/김윤종]‘문신’ 탓만 하면 캄보디아 악몽 반복된다

2 weeks ago 5

김윤종 사회부장

김윤종 사회부장
“공분이 커지려면 순수한 피해자여야 하는데, 국민이 보시기엔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모호하게 됐다. 이 이슈는 이제 끝났다.”

최근 만난 정부 관계자는 안심하는 듯한 표정으로 캄보디아 범죄 사태에 대한 여론이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캄보디아 범죄단지(웬치)에 감금돼 고문 끝에 사망한 대학생 박모 씨 사건이 알려진 뒤 비판이 컸다. 영화 ‘범죄도시2’ 속 악당 강해상(손석구) 같은 범죄자에게 우리 청년이 희생될 때까지 ‘정부는 뭐 했나’라는 지적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캄보디아 실종자 신고가 폭주하자,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국민들이 자녀들 또는 이웃들, 캄보디아 감금 피해자들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그 일환으로 현지에 구금돼 있던 한국인 64명이 18일 전세기로 송환됐다. 그런데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송환자들의 팔과 다리엔 문신이 가득했다. 피해자라기보단 범죄자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문신으로 범죄 가해자 인식 커져

이때부터 “범죄자를 구해 왔다”, “한탕을 노린 청년들은 납치 구금당해도 싸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프놈펜에 감금됐던 청년을 구출했는데, 이 청년도 문신이 있었다. 국민의힘은 “납치된 국민을 구조하랬더니 범죄자를 데려왔다. 문신 보고 국민이 놀랐다”고 지적했다.

송환자 대부분 피싱, 스캠에 가담한 범죄자가 맞다. 64명 중 59명이 구속됐고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만 캄보디아 구금자들에 대한 인식이 ‘구출해야 할 피해자’에서 ‘원래 나쁜 놈이자 구속 대상’으로 바뀌면서, 이번 사태로 드러난 구조적 문제가 묻힐 것 같아 우려된다.

캄보디아 사태는 2, 3년 전부터 경고등이 켜져 왔다. 지난해 10월 캄보디아 경찰이 서남부 범죄단지를 단속해 한국인 등 1000명을 구금했다. 여권 강탈, 분실 시 발행되는 캄보디아 내 긴급여권도 2022년 31건에서 지난해 190건으로 급증했다. 그럼에도 조현 외교부 장관은 “심각성을 10월 초에야 인식했다”고 밝혔다. 탁상행정 또한 드러났다.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은 실종된 자녀를 찾는 부모들에게 ‘가능하면 자력 탈출’ ‘갇혀 있는 위치 제출’ 등이 담긴 황당한 신고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나쁜 놈’ 넘어 ‘나쁜 구조’ 직시해야

국제앰네스티는 캄보디아 범죄에 가담했다고 무조건 자발적 범죄자로 단정하진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범죄 가능성을 알았을지라도 구금돼 고문을 받거나 인신매매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청년들을 유인해 공범으로 만드는 범죄 구조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캄보디아 중국계 조직은 한국인 브로커를 하청으로 두고 청년들을 유인한다. 총책-관리책-모집책-송금 및 세탁책-인출책을 치밀하게 갖추고 다단계 점조직으로 운영된다. 한 피싱 수사 담당 경찰은 “캄보디아 조직은 유기체처럼 움직이는데, 외교부와 경찰청 법무부 금융감독원은 다 따로 논다.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토로했다.

웬치 조직원들은 단속을 피해 주변국으로 거점을 옮기고 있다. 사기 구인 광고는 캄보디아에서 미얀마, 라오스, 등 국가명만 바뀐 채 소셜미디어에 오르고 있어, 동남아 내 코리안데스크 확대와 국제 공조 수사 체계 강화가 절실하다.

캄보디아에서 돌아오지 않은 한국인은 매년 3000명. 실종자를 찾아 나선 가족들은 “제도 정비와 대책 마련이 문신 이슈로 흐지부지될 것 같다”고 하소연한다. 이번 사태는 ‘나쁜 놈들’(문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쁜 구조’를 방치한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제2의 캄보디아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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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 사회부장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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