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불성실 기자회견으로 설전…지난달엔 "개바르거나" 발언
프로연맹 경위 파악 나서…징계 절차 개시 여부 검토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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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어린이날 수천 명의 관중이 보는 앞에서 버젓이 선수를 폭행해 물의를 빚은 프로축구 광주FC의 이정효 감독은 현재 K리그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지도자다.
2022시즌 광주 지휘봉을 잡자마자 K리그2(2부) 우승을 지휘한 이 감독은 2023시즌엔 팀을 K리그1 3위에 올려놓으며 '젊은 명장'으로 인정받았다.
이기고 있을 때도 벤치에 앉지 않고 선수들을 향해 소리 지르며 독려하는 열정과 솔직한 인터뷰에 인간적인 매력도 부각됐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열정은 주체하지 못하는 흥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때로는 '결례'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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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은 어린이날인 5일 '선수 폭행'이라는 전례 없는 기행을 벌였다.
광주가 김천 상무를 상대로 전반전을 1-0으로 마무리한 뒤 이 감독은 그라운드로 뛰어들었다.
공격수 오후성의 왼팔을 잡고 불만을 토로한 뒤 양손으로 강하게 밀쳤다.
오후성이 어떻게 받아들였건, 이 감독의 행동은 감독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이자, 엄연한 폭행이다.
폭행이란 사람의 신체에 유형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우리나라 형법상 2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범죄다.
구단이 어린이들이 좋아할 캐릭터가 들어간 유니폼을 선보이는 행사를 진행한 이날, 경기장엔 6천238명의 관중이 방문했다.
그중 상당수를 차지했을 어린이 팬들이 감독이 선수를 폭행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TV 중계를 통해서도 이런 장면이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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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TV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감독이 지나치게 흥분해 K리그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감독은 지난해 5월 경기 뒤에는 기자회견에서 공격적이면서도 불성실하게 임해 논란을 일으켰다.
인천 유나이티드와 원정 경기를 막판 실점에 아쉬운 1-1 무승부로 마친 이 감독은 당시 광주 소속이던 스트라이커 허율(울산)의 경기력을 평가해달라는 요청에 "보셨지 않았냐"라고 반문하는 등 짧은 답변으로 일관했다.
불성실한 태도를 지적하는 기자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 감독에게 어떤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공문만 보냈을 뿐이다.
광주가 2024시즌 K리그1 9위에 그치면서 이 감독은 대중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졌다.
올해 광주가 2024-2025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E)에서 8강까지 오르고, K리그1에서도 5위로 순풍을 타면서 이 감독은 다시 크게 주목받았다.
이와 함께 이 감독의 '기행'이 입방아에 오르는 일이 또다시 거듭 발생했다.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의 강팀 알힐랄과의 ACLE 8강전을 하루 앞두고 기자회견에 나선 이 감독은 "(알힐랄을) 개바르거나, (알힐랄에) 개발리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K리그를 대표해 아시아 최고 권위 프로축구 대회에 나선 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너무 '천박'한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전력에서 크게 앞서는 알힐랄은 이미 승기를 굳힌 상황에서도 무자비하게 몰아쳤고, 광주는 0-7로 참패했다.
알힐랄의 조르즈 제주스 감독은 경기 뒤 이 감독을 향해 입을 조심하라는 듯한 손동작을 했다.
이 감독은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이에 대해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어차피 안 볼 사람이라 괜찮다"고 말해 또다시 빈축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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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연합뉴스) 조남수 기자 = 12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엘리트(ACLE) 광주FC와 비셀 고베의 16강 2차전. 광주 이정효 감독이 작전 지시하고 있다. 2025.3.12 iso64@yna.co.kr
이번에 라커룸도 아닌 그라운드에서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 중 감독이 같은 팀 선수를 폭행한 것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해괴한 일이다.
감독이 다른 팀 감독이나 선수와 설전을 벌이거나 서로 몸싸움하는 일은 숱하게 벌어지지만, 같은 팀 선수에게 폭행을 가한 경우는 알려진 바가 없다.
10년 가까이 축구 중계를 해온 한 해설위원은 "국내에 중계되지 않은 유럽 중소규모 리그에서는 비슷한 사건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주요 리그에서 경기 중 감독이 선수를 폭행한 사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연휴가 끝난 첫날인 7일 경위 파악에 들어갔다. 이 감독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개시할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경기 감독관 보고서를 검토하고 회의를 거쳐 상벌위원회 소집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프로연맹 관계자는 "제재를 할 사안인지, 계도를 할 사안인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김천전 뒤 기자회견에서 "그게 나쁘게 보였다면 어쩔 수 없다. 그 부분은 책임을 지면 된다"고 말했다.
ahs@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5월07일 11시08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