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팀 기 꺾는다며 '야지문화' 방조…'지방 비하 조롱' 증언도
승부 집착에 스포츠맨십 실종…"학부모들이 교육자로 참여해야" 주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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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 앞에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배재고 야구부 일부 학생 선수들은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광주제일고와 경기 중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 구호는 지난 달 스타벅스 코리아가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맞춰 텀블러 할인 이벤트를 하며 '5·18 탱크데이'라고 홍보했던 사건을 연상케 해 공분을 샀다. 2026.7.1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광주일고와의 경기 중 조롱성 응원 구호를 외친 이른바 '배재고 사태'를 놓고 개별 학교의 일탈이 아닌 학교 체육 전반에 뿌리내린 '야지 문화'가 문제라는 지적이 학생선수 부모들 사이에서 나온다.
야지 문화란 야유·조롱을 뜻하는 일본어 '야지'(やじ)에서 파생된 말로, 상대 팀 선수를 겨냥해 조롱성 구호를 단체로 외치는 관행을 뜻한다. 상대의 기를 꺾는다는 명분 아래 오랫동안 묵인돼 왔다.
정치권과 교원단체가 역사 인식 부재나 혐오 일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승리를 위해 상대 조롱을 장려하는 승리 지상주의가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5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회원 4만5천명이 모인 국내 최대 야구선수 학부모 온라인 카페에선 배재고 사태 이후 야지 문화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한 학부모는 1일 올린 글에서 "이겨야 한다며 어른들이 '야지 문화'를 허용한 것"이라며 "'안 된다'고 감독·코치에게 항의한 부모님이 계시면 손을 들어보라. 여기 책임 없는 사람이 없다"고 꼬집었다.
다른 학부모는 "조롱하는 더그아웃 문화는 오래된 악습"이라며 "배재고가 선을 크게 넘었으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쁜 문화가 있는 건 학부모로서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댓글 중엔 광주일고와 유사한 일을 겪었다는 토로도 나왔다. 자녀가 충남 한 학교의 야구부원이라는 다른 학부모는 지난해 서울 연고 팀으로부터 경기 내내 "알밤 따러 가야지", "고추 따러 가야지" 등 지방 비하성 응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기 후 학부모들이 화가 많이 나 상대 선수들에게 뭐라고 소리쳤다"며 "그러자 상대 선수들이 와서 '죄송합니다' 인사하는 척하고 다시 껄껄껄 놀려대고 들어갔다. 정말 치를 떨었던 기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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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TV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카페엔 배재고 관련 글만 20개가량 올라와 있다. 징계 수위가 적절한지를 둘러싼 갑론을박도 있지만, 승부에만 집착하느라 규칙과 상대를 존중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스포츠맨십'은 뒷전이었다는 자성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현상은 국내 유소년 체육의 '엘리트 스포츠' 속성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어드바이저인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엘리트 스포츠는 승부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며 "(이 선수들에게) '스포츠맨십' 이야기를 하는 것은 수능 수험생에게 '항상 바르게 살라'라고 하는 격"이라고 했다.
야구뿐 아니라 다른 종목 학부모들도 폭행·성범죄 예방 교육 외에는 실효성 있는 스포츠 윤리 교육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초등학교 6학년 자녀가 부산에서 축구선수 생활 중인 이모(42)씨는 "코치가 '상대를 자극하지 말라'는 지침은 주지만 근본적인 설명은 없다"고 말했다. 10년간 학생선수 생활 끝에 자녀가 K-리그에 입성한 김모씨는 "'최선을 다하고 상대를 존중하라'는 얘기는 학부모의 교육 영역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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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은 '공부하는 선수'를 만들겠다며 일정 성적을 얻지 못하면 대회 참가를 막는 최저학력제를 운영 중이다. 선수의 전인적 성장을 이끌겠다는 취지지만, 스포츠맨십 같은 윤리·인권 교육은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장을 지낸 김현수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현행 스포츠 인권 교육은 사실상 폭행·성폭력 방지"라며 "혐오나 조롱은 아예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창우 운동선수 학부모연대 회장은 "대한체육회, 스포츠윤리센터 등의 인권 영상 교육은 틀어놓고 안 보는 경우가 많아 효용이 떨어진다"며 "체육 현장을 잘 아는 학부모들이 교육자로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pual07@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7월05일 06시55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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