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통제 가능하다는 착각
《당신은 젊은가. 그렇다면 수족을 자연스럽게 놀릴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스럽게”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당신은 평소 손발이 몸에 부착돼 있다고 굳이 느낄 필요가 없다. 그것은 그냥 거기 있다. 손발은 그토록 몸의 자연스러운 일부여서,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할 것이다. 당신이 자주 쓰는 “손만 까딱하면”이라는 표현에는 손 움직이기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일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손을 뻗고 싶으면 뻗고, 발을 올리고 싶으면 올린다. 여기에 의식적인 결단이나 집요한 노력은 필요 없다. 그저 된다. 당신처럼 젊고 건강한 사람은 체조나 스트레칭도 필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당분간은.》
예술가 헤드비흐 하우번은 아직 젊다. 그런데도 어느 날 손이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경련을 일으켰다. 그것도 집에서 낮잠을 잘 때가 아니라 밖에서 강연을 할 때. 젊은 그에게 이것은 충격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의사를 찾는 데 그쳤겠지만, 하우번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몸의 각 부분이 자아의 의지에 따르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나름의 독립성을 가진 능동적 존재라고. 그리고 정제된 언어보다 이런 몸의 반응이 훨씬 더 빨리 온다고. 하우번은 이 체험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고, 그 결과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전시 ‘길들일 수 없는 손(The Untamable Hand)’으로 열매 맺었다. 이 전시는 올해 본 가장 인상적인 전시 중 하나다.
이러저러한 요소들이 모여서 간신히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가 바로 몸이다. 내가 내 몸의 통일성을 유지한다는 것도 다 환상인지 모른다. 몸의 어느 부분을 잘 대하지 않으면, 그 부분은 곧 제멋대로 굴기 시작할 것이다. 자아와 손은 더 이상 주인과 하인의 관계가 아니다. 그렇다면 무슨 관계인가. 하우번은 대화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즉, 우리의 자아와 사지의 관계는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사지와 잘 대화해야 하고, 대화를 위해서는 경청해야 한다. 그러한 경청과 대화 속에서 간신히 몸은 추슬러진다.
그렇게 추스르는 일이 바로 정치다. 질서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추스름을 통해 간신히 확보되는 아슬아슬한 통일 상태다. 일국의 정치가 몸의 정치와 얼마나 다르랴. 몸의 정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사지의 말단이 경련을 일으키듯, 일국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변경은 제어되지 않는다. 국제정치라고 얼마나 다르랴. 국제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약소국들은 제국의 뜻대로 제어되지 않는다. 약소국은 제국의 단순한 종속물이 아니다. 국제정치에서 대화가 사라질 때, 약소국은 제국이 만든 궤도에서 이탈하기 시작한다. 강제를 버리고 대화를 시작할 때 비로소 성숙한 관계가 시작된다. 대화를 위해서는 상대도 주체임을 인정해야 하고, 주체성을 인정했으면 경청해야 한다. 경청하지 않으면 대화가 불가능하다. 오랫동안 대화가 단절되면, 어느 날 관계의 청구서가 날아온다. 당신이 귀찮다고 스트레칭을 오랫동안 하지 않으면 어느 날 몸의 청구서가 날아오듯이. 근육이, 뼈마디가, 관절이 저마다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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