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정유미 감독 "마음 녹인 개인적 이야기, 보편성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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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 유일 韓 작품…"왜곡된 시선 탈피해 자기 수용하는 모습 그려"

20년간 독립 애니만 연출…"늙어 죽을 때까지 작업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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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영화 '안경' 정유미 감독

메타모포시스[매치컷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장편 영화가 한 편도 초청받지 못하면서 충무로에 실망감이 도는 가운데 애니메이션 감독 정유미가 최근 낭보를 전했다.

그의 신작 애니메이션 '안경'이 제78회 칸영화제의 비공식 부문인 비평가주간 단편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는 소식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이 부문의 초청장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데뷔작 '나의 작은 인형상자'(2005) 이후 20년 동안 독립 단편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선보인 정 감독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세계적인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는 국내 유일의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2009년 '먼지아이'로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대됐고 '수학시험'(2010), '연애놀이'(2013), '존재의 집'(2022), '서클'(2024)로는 베를린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연애놀이'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최초로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그랑프리(대상)를 수상하기도 했다.

"독립 애니메이션 특성상 제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전 항상 제가 느끼고 생각하는, 그러니까 저의 '마음'을 작품에 녹이거든요.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2일 전화로 만난 정 감독은 세계 평단이 그의 작품 세계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를 뭐라고 보느냐는 말에 쑥스러워하며 답했다.

그는 "제 작품에는 대사도 나오지 않는다"며 "오직 이미지로만 구성돼 해외 관객에게도 느낌이나 메시지가 잘 전달되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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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영화 '안경' 속 한 장면

[매치컷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안경' 역시 대사가 없는 작품으로 정 감독의 페르소나인 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다. 안경원을 찾은 여자가 시력 검사를 하던 도중 들판 위의 집을 보게 되고, 이곳에서 자기 내면의 그림자와 마주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다.

정 감독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왜곡돼 있다는 걸 느끼고서 구상하게 된 작품"이라면서 "안경은 (무언가를 규정하는) 프레임을 상징하는 소재"라고 소개했다.

"저의 특정한 모습을 수용하지 못하고 아주 미워할 때도 있어요. 그 프레임을 벗는다면 (온전한) 나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탈피와 수용을 통해 우리의 존재가 완전히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어요."

이처럼 정 감독 영화의 메시지가 강한 데다 그림체 역시 서늘한 느낌을 줘 어떤 사람들은 그의 작업물을 보고서 무섭다는 반응도 보인다고 한다.

정 감독은 "동화 같은 작품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며 "밝고 예쁜 장르를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웹툰이나 상업 애니메이션에 눈길을 주지 않고 오직 독립 애니메이션을 고수해온 것도 이 분야가 그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상징적인 이야기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데 관심도 있고 할 수 있는 능력도 있는 것 같다"며 "대중적인 언어에는 재능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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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 감독 단편 애니메이션 '서클' 속 한 장면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를 애니메이션 감독의 길로 이끈 것도 고등학생 시절 본 한 실험 애니메이션이었다.

이끌리듯 이 작품에 매료된 정 감독은 이후 부모의 반대를 이겨내고 미술대학 회화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 입학해 애니메이션 연출을 공부했다.

그는 "어머니께선 교직 이수를 해서 미술 교사가 돼 안정적으로 살기를 바라셨다. 저도 잠깐 회사에 다녀보기도 했다"면서도 "그때 저는 창작활동을 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독립 애니메이션은 상업 애니메이션과 달리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군가의 대단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분야도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다음 작업을 할 수 있을지 확실히 예측하기도 쉽지 않죠. 하지만 여력만 된다면 계속해서 작업하고 싶어요. 다만 꼭 애니메이션에만 한정 짓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그림책이든 회화든 다양한 방식으로 늙어 죽을 때까지 저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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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 감독 애니메이션 영화 '파라노이드 키드' 속 한 장면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ramb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4월23일 08시38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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