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에 납치된 항공기 두 대가 세계무역센터를 무너뜨렸다. 3000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날 이후 매년 9월 11일이면 추모 행사가 그라운드 제로에서 열린다. 10주기를 맞이한 2011년 9·11 메모리얼 파크가 조성돼 대중에게 공개됐다.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세워지지 않았다. 대신 건물 면적만큼 크고 깊은 구멍이 그곳에 있다.
지난여름 검은 옷을 입고 그라운드 제로를 찾았다. 텅 빈 자리를 시각화한 듯한 구멍 아래로 물줄기가 쏟아지듯 흐르고 있었다. 물은 고이지 않고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어두운 구멍 아래를 보려면 몸을 기울여야 했다. 시선이 아래로 향할 때 묵념하는 자세가 됐다. 구멍을 에워싼 검은 동판에 많은 사람의 이름이 오목하게 새겨져 있었다. 어떤 사람의 이름 위에는 희생자의 생일을 기념하는 하얀 꽃이 꽂혀 있었다.
세계무역센터 공모전에서 52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채택된 건축가는 의도적인 침묵과 공백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거대하게 조성된 사각 구멍의 이름이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구멍 아래로 흐르는 물은 채워도 채울 수 없는 한 사람의 부재에 대한 표현이었다.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한 사람의 고유한 자리가 그곳에 있었다.
문학에서도 9·11로 인한 부재를 반추하는 작품이 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은 9·11로 아빠를 잃은 아홉 살 소년 오스카가 주인공이다. 오스카는 아빠의 1주기에 우연히 열쇠 하나를 발견한다. 열쇠가 담긴 봉투에는 ‘블랙’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오스카는 그 열쇠가 진실을 알려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뉴욕에 사는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을 모조리 만날’ 탐험 계획을 세운다. 탐험은 오스카와 아빠가 즐겨 하던 놀이방식이다. 아홉 살 오스카는 학교도 제쳐두고 계획을 실행한다. 열쇠에 맞는 단 하나의 구멍을 찾기 위한 뉴욕 탐험은 아빠의 부재를 반추하는 동시에 아빠를 가까이 느끼는 과정이다.
오스카의 느닷없는 방문에도 ‘블랙들’은 오스카를 외면하지 않는다. 자신의 상처와 상실의 경험을 꺼내며 대화한다. 오스카는 아빠와 단절됐지만, 그 단절로 세상과 연결된다. 9·11이라는 비극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형성되고, 애도를 통해 새로운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오스카는 할아버지를 모르고 자랐다. 할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드레스덴 폭격으로 말을 잃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충격으로 자취를 감춘 할아버지는 40년 만에 할머니 앞에 나타난다. 공항에서 방문 목적을 묻는 말에 그는 ‘애도하기 위해서’라고 썼다가 ‘다시 한번 살아보기 위해서’라고 고쳐 쓴다.
할아버지는 그동안의 부재를 만회하려는 듯 오스카와 동행한다. 그들은 같은 사람을 잃었고, 상실에 대한 공유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오스카는 아빠의 빈 관을 확인하며 비로소 아빠의 부재를 선명하게 본다. 할아버지는 아들의 빈 관에 그동안 쓴 수많은 편지를 채워 넣는다. 전하지 못한 말을 전하는 두 사람의 애도의식이었다.
혼자서는 해결 불가능한 아픔이 어떻게 공동체를 통해 치유될 수 있는지, 소설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함께 반추하며 혼자만의 아픔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오스카는 앞으로 살아나갈 것이다. 이별의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으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되새긴다. 너무 늦지 않게.

1 month ago
12
![[IT's 헬스]수면 중 뇌 깨우는 '카페인', 턱 건강도 무너뜨린다](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5/11/10/news-p.v1.20251110.e225b2f1261643cfb6eeebb813e01dff_P1.jpg)
![[부음] 유규상(서울신문 기자)씨 외조모상](https://img.etnews.com/2017/img/facebookblank.png)
![[5분 칼럼] ‘진보 정권의 아이러니’ 재현하지 않으려면](https://www.chosun.com/resizer/v2/XUGS65ZOHFNDDMXKOIH53KEDRI.jpg?auth=f32d2a1822d3b28e1dddabd9e76c224cdbcdc53afec9370a7cf3d9eed0beb417&smart=true&width=1755&height=2426)








![닷컴 버블의 교훈[김학균의 투자레슨]](https://www.edaily.co.kr/profile_edaily_512.pn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