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붓과 그림의 세계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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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칼럼] 붓과 그림의 세계는 끝이 없다

미술관이나 전시장에 가면 한국화 앞에서는 어느새 발걸음이 빨라진다. “음… 산이네” “여백이 많네” “옛날 그림이네” 한 바퀴를 휙 돌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지나치자.”

솔직히 말해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서양의 원근법이나 캔버스의 질감에는 자연스럽게 익숙하면서도, 정작 우리 땅에서 자라난 수묵과 채색의 세계를 찬찬히 들여다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K팝이 세계 차트를 휩쓸고, K드라마가 해외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 시대에 정작 우리 스스로는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붓과 먹의 언어로부터 너무 멀어져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화를 보며 ‘모르겠다’고 느끼는 그 막연한 거리감이 어디서 온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화가 정말 지루하고 어려운 장르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가 그 그림 안에 담긴 속마음을 읽는 법을 한 번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말이다. 대구미술관 개관 15주년 기념 특별전 ‘서화무진(書畵無盡)’은 바로 이 질문 앞에서 출발하는 전시다. 미술관의 1, 2, 3전시실부터 어미홀까지 거의 모든 공간을 한국화로 가득 채운 이 대규모 전시는 83명의 작가가 빚어낸 200여 점의 작품을 통해 한국화가 어떤 토대가 돼 오늘의 한국 미술로 확장돼 왔는지를 눈앞에 펼쳐 보인다.

전시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 딱 하나만 알고 가면 된다. 한국화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쓰인 지는 고작 4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총독부는 우리 그림에 동양화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가 붙인 이름이 아니었다. 해방 이후에도 그 명칭은 한동안 그대로 사용됐고, 이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1967년 한국화회 창립을 계기로 비로소 주체적인 명칭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그리고 1982년 대한민국미술대전이 동양화부를 한국화부로 바꾸고, 1983년 개정 미술 교과서에 한국화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자리 잡기까지 무려 6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우리 그림에 우리 이름을 붙이는 데만 그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국 미술이 얼마나 지난한 정체성의 싸움을 해왔는지가 새삼 느껴진다.

그렇게 이름을 늦게 되찾은 한국화지만, 서양화와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 자체가 다르다. 서양화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최대한 정확하게 화면에 옮기는 데 몰두했다면, 한국화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 붓 안에 담으려 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생각해 보자. 그의 글씨는 단순히 아름다운 서체가 아니다. 거기엔 인간의 숨결과 세월, 그리고 말로 다 옮기지 못한 감정이 응축된 하나의 풍경이 있다. 한국화에서 붓 한 획은 바로 그런 것이다. 산을 그리면서 산 너머의 고요함을, 대나무를 그리면서 그 사이를 스치는 바람의 기운까지 함께 담아내는 것이다.

재료가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응시하는 태도 자체가 달랐다. 이번 전시는 그 태도가 어떻게 씨앗이 되고, 어떻게 오늘의 한국 미술로 넓고 깊게 뻗어 나갔는지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우리가 한국화를 ‘단순한 먹그림’으로 여겨온 것은 그림이 멈춰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시선이 그 앞에서 일찌감치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한국화는 그 자체로 완결된 과거의 미술이 아니라 현대 한국 미술이 끝없이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온 가장 깊고 오래된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쓰이고 있다. 서화무진, 붓과 그림의 세계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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