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산업이 초호황이다. 국내 반도체 양사의 성과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두 회사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가 500조원을 훌쩍 넘고 있다. 작년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 2663조원의 약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인공지능(AI) 혁명에 기반한 이번 반도체 초호황은 과거와 달리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다. AI 기술은 생성형 AI를 넘어 자율주행, 로봇, 무인 생산으로 빠르게 진화하며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문명사적 대전환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증권사는 반도체 양사의 영업이익이 올해에 이어 내년, 후년에도 증가세를 이어가며 최대 100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전망의 불확실성을 감안하더라도 반도체산업의 막대한 성장 잠재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건설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반도체산업의 국제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내 기업이 누리고 있는 천문학적 이익을 경쟁 기업들이 마냥 지켜보고만 있을 리 만무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 역량을 보유한 미국, 반도체 강국 위상 회복에 절치부심 중인 일본, 무섭게 추격하는 중국 기업의 도전은 갈수록 거세질 공산이 크다.
AI 혁명은 기업 경쟁을 넘어 국가 패권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산업에 수십조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무리해서라도 대중국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 역시 2030년 세계 최고 수준의 AI 강국 도약을 목표로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로 맞서고 있다.
AI산업은 누가 먼저 시장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대표적인 선점 산업이다. 검색 시장의 구글과 AI 반도체 시장의 엔비디아가 보여주는 압도적 시장 지배력도 선점 효과 덕분이다. 국내 반도체기업의 초격차 역시 투자와 기술 개발에서 경쟁사를 앞서 나간 속도 경쟁의 산물이다. 따라서 국내 반도체산업은 물론 한국 경제의 미래 역시 속도 유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전력이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전력 다소비 산업이다. 우리 미래가 달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필요한 전력 규모는 15기가와트(GW)에 이른다. 대형 원전 약 10기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다. 현재 송전선 확충, 신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건립의 방법으로 9GW를 확보할 계획이지만 여전히 6GW는 공백 상태다. 그것도 계획상 그렇다는 말이다. 최근 주민 반발과 인허가 문제로 전력 설비 건설이 수년씩 지연되기 일쑤인 점을 감안하면 계획된 전력 공급조차 제때 이뤄질지 장담하기 어렵다.
AI산업에 필요한 전력은 완벽한 미래 전원이 아니라 당장 공급 가능한 전원이다. 반도체 공장 인근의 LNG 발전과 연료전지 발전설비 확충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건설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장거리 송전선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 방향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듯하다. LNG 발전의 전력구매 계약은 AI데이터센터 특별법에서 제외되고, 연료전지는 일반 청정수소 시장에서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 확대가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경제성을 갖춘 대규모 그린수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AI산업의 판도는 몇 년 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상적 청사진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할 실용적 에너지 정책이다.

2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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