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수 있는 물은 1%, 정의롭게 흘러야 한다[기고/임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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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준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임상준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지구를 ‘물의 행성’이라 부르지만 인류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물은 전체의 1% 미만이다. 지구 물의 97.5%는 바닷물이고 담수는 2.5%뿐이다. 그나마도 담수의 69%는 빙하에 갇혀 있고 30%는 땅속 깊은 곳에 저장돼 있다. 이 희소한 1%를 놓고 인류는 끊임없이 확보를 위한 전쟁을 치러 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이미 물이 산업과 생존의 핵심 변수가 되는 ‘물 리스크’ 시대에 진입했다. 특히 반도체, 2차전지 등 우리 경제의 전략산업은 막대한 양의 용수 없이는 단 하루도 굴러갈 수 없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물을 ‘얼마나 확보하느냐’는 물음을 넘어 ‘그 1%의 물이 얼마나 정의롭게 흐르는가’라는 더 본질적인 질문에 답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사회 모든 부문이 그러하듯 기후재난 또한 공평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밀집한 도시는 빗물이 스며들 틈을 주지 않는다. 갈 곳을 잃은 빗물은 저지대 주거지역으로 몰려들면서 수해로 이어진다. 가뭄도 마찬가지다. 도심의 수도꼭지는 여전히 깨끗한 물을 쏟아내지만, 그 물의 근간을 제공하는 농촌의 논바닥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다. 계층에 따라 누리는 혜택이 다르고 수익과 부담의 주체가 다른 경우도 많다. 이러한 불일치를 직시하고 해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 올해 유엔 ‘세계 물의 날’(3월 22일) 주제인 ‘물 정의(Water Justice)’의 핵심이다. 이러한 정의의 개념을 세 가지로 짚어 볼 수 있다.

첫째, 수도꼭지의 차별로 대변되는 배분적 정의다. 어디에 사느냐가 마시는 물의 질이나 재난 피해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도농 간, 지역 간 인프라 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국가 환경 서비스의 기본 의무다. 각 지역의 상하수도 현대화, 물 재해 예방, 스마트 물 관리는 단순한 시설 정비가 아니라 국내 어디서나 차별 없는 물 복지를 누리게 하는 정의로운 인프라의 완성이다.

둘째, 미래의 자원을 가로채지 않는 세대 간 정의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다음 세대의 결핍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물의 생명주기를 연장해야 한다. 일례로 하수 처리수를 산업용수로 재탄생시키는 물 순환은 단순한 효율화를 넘어 미래세대가 쓸 담수를 미리 보전하는 가치 있는 투자다. 지속 가능한 물 관리는 미래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셋째, 인공지능 전환(AX·AI Transformation) 시대의 기술적 정의다. AI와 디지털 트윈이 물 관리의 효율을 높이고 있지만, 기술이 그 자체로 새로운 격차를 만들거나 폐쇄적인 정보의 요새가 돼서는 안 된다. 데이터가 모두를 위한 상식이 될 때 진정한 기술적 정의는 가능하다. 기술은 소수를 위한 권력이 아니라 가장 취약한 현장까지 촘촘하게 살피는 지능형 안전망이 돼야 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생명을 살린다. 하지만 정책과 가치는 낮은 곳에서 시작돼 높은 곳으로 향해야 한다.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강조했듯, 가장 큰 혜택은 사회적 약자에게 먼저 닿아야 한다. 동시에 그 혜택이 미래세대까지 끊기지 않도록 하는 물의 흐름이 필요하다. 이러한 물길을 여는 것은 누군가가 아닌 ‘우리 모두’의 몫이다. 올해 물의 날이 1%의 희소한 자원을 넘어 100%의 정의로운 공유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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