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네이버벤처스를 설립한다.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신규 자회사다.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술과 인재를 현지에서 적극 발굴해 네이버의 AI 전략과 시너지를 내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3월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한 이해진 창업자(사진)가 AI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던진 승부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영진 실리콘밸리로 총출동
16일 테크업계에 따르면 이 의장은 다음달 실리콘밸리를 찾아 스타트업 창업자, AI 엔지니어, 벤처캐피털(VC) 관계자 등 현지 테크 커뮤니티와 만날 예정이다.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한 후 첫 공식 해외 일정이다. 이 의장의 실리콘밸리 일정엔 최수연 네이버 대표, 김남선 네이버 전략투자부문 대표가 동행한다.
네이버 경영진의 실리콘밸리 방문을 계기로 미국 투자 법인인 네이버벤처스도 새롭게 출범한다. 국내에서 초기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해온 사내 투자조직 D2SF와는 별도로 미국 현지에서 경쟁력 있는 AI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현지 테크업계와 협업하는 것이 목표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 세계 AI 투자 자금은 실리콘밸리로 몰리는 상황”이라며 “네이버가 현재까지 한 것보다 훨씬 더 공격적으로 AI 투자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네이버벤처스를 ‘더 확장된 벤처 투자 이니셔티브’라고 소개했다.
네이버는 자체 대규모언어모델(LLM)인 하이퍼클로바X를 개발했지만 글로벌 빅테크와 비교해 뚜렷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을 받는다. 개발 비용과 성능 면에서 미국과 중국 등의 대표 AI 모델에 뒤처진다는 얘기다. 다가올 AI 에이전트 시대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추론 AI 모델 역시 아직 시장에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벤처스 설립은 글로벌 AI 투자를 통해 교착상태인 AI 전략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지난 3월 네이버 정기주주총회에서 이 의장은 네이버의 지지부진한 AI사업을 비판하는 질문에 “네이버가 AI 시대를 이끌어가야 할 회사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며 “올해 더 공격적이고 활발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경영진이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리콘밸리 행사 초대장에 따르면 네이버벤처스는 ‘네이버에 전략적·기술적 가치를 제공할 글로벌 기회를 발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본사와 기술적 시너지”
네이버는 D2SF를 통해 미국 AI 스타트업 투자를 조금씩 해왔다. 지난해 D2SF는 다섯 건의 스타트업 투자를 했다. 이 중 세 건이 미국 AI 스타트업 투자다. AI 애드테크 솔루션 기업인 램브랜드, 3차원(3D) 콘텐츠 스타트업 클레이디스, 패션 특화 멀티모달 AI 스타트업 예스플리즈 등이다. 네이버의 신규 스타트업 투자가 북미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을 중심으로 대량의 감원을 하고 있다”며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연구기관과 대학 지원을 중단하거나 대폭 줄이고 있어 네이버 등 국내 기업으로선 인재를 채용할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기술과 투자 경쟁이 치열한 실리콘밸리에 진출해 네이버가 얼마나 존재감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네이버가 해외 투자를 본격화하면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더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의 북미 투자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한국형 소버린 AI 전략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고은이/최영총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