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거탑’ ‘낭만닥터 김사부’ ‘중증외상센터’까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의학 드라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출중한 실력을 갖춘 주인공들은 환자에게는 더없이 너그럽고 자상하지만, 후배 의사에게는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까칠하기가 이를 데 없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상대방을 앞에 두고 머저리, 바보, 심지어 노예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유독 의학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까칠함이 극 중 긴장감을 높이고 주인공의 캐릭터를 형성하는 장치로 자주 등장한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환자 생명이 좌지우지되는 의료기관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주인공의 엄격한 훈육 방식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매뉴얼은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상 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조롱하는 행위, 다른 사람 앞에서 모욕감을 주는 언행을 직장 내 괴롭힘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설명하고 있다. 업무상 필요한 훈육과 직장 내 괴롭힘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실제 하급심 사례에는 외상센터에서 선임 간호사가 심폐소생술에 서툰 수습 간호사를 질책하며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거나, 가만있으라고 지시한 것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가 문제 된 적이 있었는데, 사건을 심리한 법원에서는 선임 간호사의 훈육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위중하고 급박한 상황이 발생하는 외상센터에 근무하는 간호사에게는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성이 요구된다는 점, 선임 간호사는 수습 간호사가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임 간호사의 언행이 교육 목적을 벗어난 폭언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또 다른 의학 드라마에서도 여지없이 까칠한 실력자 선임 교수가 병원 복도가 떠나가도록 레지던트의 실수를 지적하며 혼내는 장면이 나온다. 이 따위로 할 거면 병원은 왜 오고 월급은 왜 받냐고 비아냥거리며 이것도 교육이고 훈육이라고 강변하는 선임 교수를 상대로, 다른 동료 교수가 단호한 목소리로 지적하며 그를 움찔하게 한다. 잘못이 있으면 불필요한 얘기는 하지 말고 그 잘못만 얘기하라고. 잘못을 하면 당연히 혼내야 하지만 혼내는 장소와 문장에도 예의는 필요하다고.
업무상 훈육과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모욕적 언사는 쉽게 구분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둘은 목적, 필요성, 시점 등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업무상 훈육이 상대방의 성장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직장 내 괴롭힘은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거나 주관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또 업무상 필요한 훈육이 잘못이 이뤄진 시점에 상대방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 때 이뤄진다면, 직장 내 괴롭힘은 과거의 잘못을 소환하고 잘못과 상관없는 과거의 잘못까지 소환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업무상 훈육은 조직과 훈육받는 상대방 관점에서 이뤄지나, 직장 내 괴롭힘은 행위자의 이익이나 사정을 중심으로 이뤄질 때가 많다.
마땅치 않은 결과물을 가져온 상대방을 혼내거나 질책하려는 순간이라면 한번 생각해 보자. 나는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가 아니면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가. 나는 상대방에게 망신을 주고자 하나 아니면 가르침을 주고자 하나. 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고 비난하는 것인가 아니면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지적하는 것인가. ‘예의 있는 훈육’을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