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팝 대표 히트곡에 떼창·환호…한국어로 "감사합니다 펄프입니다"
"펜타포트, 20년을 살아남아 여름 음악 축제 천하통일"…3일치 입장권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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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아이 원트 투 리브 위드 커먼 피플 라이크 유∼'(I want to live with common people like you∼)
2일 오후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 마련된 대형 스테이지 앞에 '록 마니아'들의 우렁찬 떼창이 울려 퍼졌다. 구름떼 같은 관객을 진두지휘한 팀은 올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영국 유명 밴드 펄프(Pulp).
펄프는 '커먼 피플'(Common People), '디스코 2000'(Disco 2000) 등 브릿팝을 대표하는 히트곡부터 올해 발표한 신보 수록곡까지, 오래도록 기다려왔을 한국 팬들 앞에 음악 보따리를 선물처럼 펼쳐냈다.
바로 올해 햇수로 20주년을 맞은 국내 대표 록 음악 축제인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하 펜타포트) 현장에서다. 펄프는 행사 둘째 날인 이날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로 일찌감치 관객의 큰 관심을 받았다.
펄프의 보컬이자 프론트맨인 자비스 코커는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펄프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넸고, 무대 도중 또다시 우리말로 "춤을 출 수 있나요?"라고 호응을 유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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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펄프는 성(性)이나 계층 의식 등 민감한 소재도 재치 있게 풀어낸 가사로 유명하다. 1978년 결성 이래 반세기 가까이 활동했지만 코커를 필두로 한 멤버들은 음악을 통해 여전히 녹슬지 않은 번뜩이는 위트와 총기를 뽐냈다.
이들은 두 번째 곡으로 히트곡 '디스코 2000'을 불러 단숨에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공연 후반 '두 유 리멤버 더 퍼스트 타임?'(Do You Remeber The First Time?)과 '커먼 피플' 등 익숙한 히트곡이 나오자 관객들은 익숙한 멜로디에 맞춰 제자리에서 점프하거나, 지인끼리 삼삼오오 합(合)을 맞춰 춤을 추며 음악을 즐겼다. 격렬한 몸짓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자 아예 상의를 '훌훌' 벗어버리고 춤사위를 벌이는 관객도 있었다.
푹푹 찌는 무더위에도 '영국 신사'처럼 말쑥한 셔츠에 재킷 차림으로 등장한 코커는 익살스럽거나 재치 있는 동작을 이어가며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고, 무대에 누워서 열창하는 퍼포먼스도 보여줬다.
이날은 펄프가 연 통산 572번째 공연이었다. 펄프는 노래 중간중간 미리 준비한 한국어로 팬들과 소통하는 정성을 보였다.
멤버들은 올해 발매한 신보 '모어'(More)에 수록된 신곡 '스파이크 아일랜드'(Spike Island) 같은 신곡도 들려줘 팬들을 반갑게 했다.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무대 아래에는 커다란 원형 공간이 만들어졌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관객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강강술래'처럼 빙빙 돌며 무대를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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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연합뉴스) 임순석 기자 = 1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2025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관람객들이 장기하의 공연을 즐기고 있다. 2025.8.1 soonseok02@yna.co.kr
이날 한낮의 수은주는 35도에 육박할 정도로 한여름 폭염이 기세를 떨쳤다. 그나마 해가 서해 바다 너머로 자취를 감추고 저녁 바람이 솔솔 불어오면서 행사장은 축제 분위기로 물들었다.
낮 시간 챙 넓은 모자와 선글라스로 더위와 사투를 벌이던 관객들도 저녁이 되자 한결 여유로운 모습으로 거대한 일(一)자형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겼다.
관객 김수정(28)·김리나(29)씨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펄프의 무대를 즐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폴 매카트니의 일본 공연에서 만난 이들은 영국에서 열린 오아시스의 공연도 다녀올 정도로 영국 음악에 대한 애착이 깊다고 했다.
이들은 "펄프의 무대를 너무나 기대해왔다. 오늘만 기다렸다"며 "'디스코 2000'처럼 그 당시 다른 이들은 하지 않은 음악을 시도했다는 점이 좋다. 이번에 나온 신곡도 잘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펜타포트가 20년 동안 이어오며 록 음악에 자리를 마련해 주는 건 굉장히 고마운 일"이라며 "첫날 입장 과정에서 주최 측의 미숙함이 있기는 했지만, 앞으로 나아지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펜타포트는 지난 2006년 처음 열린 이래 '록의 불모지' 같은 우리나라에서 약 20년간 명맥을 이어오며 국내 대표 록 음악 축제로 우뚝 섰다. 3일치 입장권이 모두 팔려나가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도 있을 정도다.
이 기간 뮤즈, 콘, 트래비스, 스콜피온스, 폴 아웃 보이, 잭 화이트 등 숱한 록 스타들이 인천을 거쳐 갔다. 이들의 이름이 가지런히 적힌 역대 포스터를 전시한 공간도 행사장 한편에 마련됐다.
올해 행사에서는 일본 록 밴드 아시안 쿵푸 제너레이션, 영국 여성 래퍼 리틀 심즈, 화제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가상 걸그룹 헌트릭스 멤버로 노래한 오드리 누나 등이 출연진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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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연합뉴스) 임순석 기자 = 1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2025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관람객들이 장기하의 공연을 즐기고 있다. 2025.8.1 soonseok02@yna.co.kr
국내 출연진으로는 크라잉넛, 자우림, 3호선 버터플라이, 너드커넥션, 이승윤, 글렌체크, 터치드, QWER 등이 포함됐다.
마지막 날인 3일 헤드라이너로는 미국 '그래미 어워즈'에서 8차례 수상한 싱어송라이터 벡이 나선다. 그가 한국에서 공연하는 것은 9년 만이다.
현장에서 만난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는 "펜타포트는 록이라고 하는 한국에서 단 한 번도 주류가 된 적이 없는 장르를 가지고 무수한 부침을 겪으면서도 20년을 살아남아 여름 음악 축제 시장을 천하통일했다"며 "지구 온난화로 갈수록 여름이 더워지고, 한국 대중이 쾌적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가운데 이와 정반대 편에 있는 음악 축제가 3일 전석이 매진됐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한국 여름을 대표하는 이벤트로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tsl@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8월02일 22시34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