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부산행’
“대규모 폭력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군대 병력을 충원하여 국민 여러분들을 안전하게 지켜드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정부는 절대로 여러분들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좀비 바이러스의 창궐로 국가비상사태를 맞았다. 이때 TV 속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외친다. 아비규환이 된 세상에서 정부의 대처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이다. 영화 속 정부 관계자들이 말하는 ‘여러분’이란 뭘까. 손에 잡히지 않는, 그래서 숫자로 치환되는 유령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저 떼로 취급되는 좀비들의 죽음처럼 그다지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는 그런 존재.좀비들이 공격하는 부산행 KTX에 딸과 함께 오르게 된 주인공 석우(공유 역)에게도 그런 숫자로만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펀드매니저로 VIP 고객의 돈을 불려 줄 때, 저편에서 죽어 나가는 개미 투자자들이다. “지금 같은 때에는 자기 자신이 제일 우선이야.” 석우는 그렇게 재난 상황 속에서도 이기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하지만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착한 딸을 지켜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던 그가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가까스로 살아남게 되자 저만 살겠다고 문을 닫아버린 자에게 항변한다. “다 들어올 수 있었잖아!” 그저 숫자로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개미들’의 위치에 자신이 서게 되자 그는 급기야 희생을 선택한다. 좀비로 화한 그의 죽음은 숭고한 느낌마저 준다.
재난의 피해자들이라도 숫자로만 취급되는 존재는 우리에게 실감을 주지 못한다. 그 숫자 하나하나가 생생히 살아 있는 누군가의 삶이라는 걸 눈앞에서 보고 뼈저리게 느껴야 우리는 비로소 그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데이터의 시대는 종종 살아 있는 사람을 숫자로 좀비화한다. 숫자 이면에 존재하는 삶의 실체를 애써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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