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과학기술계의 '케데헌'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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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덕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에어모빌리티연구본부장임채덕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에어모빌리티연구본부장

대한민국은 지금 과학기술 혁신을 통해 세계보다 한발 앞서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인공지능(AI), 로보틱스, 양자기술 등 최첨단 기술은 우리의 삶을 이전보다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국가의 성장 동력과 직결된다. 그러나 그 최전선에서 활약해야 할 과학기술 인재 풀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구절벽과 이공계 기피 현상이라는 이중의 위기가 동시에 닥친 것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2023년 기준 0.72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며, 2024년 상반기에도 여전히 0.7명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인구 유지에 필요한 2.1명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실제로 과학기술인들 가운데 87%가 '처우 악화와 미래의 불투명성'을 이공계 기피의 주된 이유로 꼽았고, 지난 10년간 30만 명 이상의 이공계 인재가 해외로 유출됐다. 이런 현실에서 여성과학기술인의 참여 확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유전자 연구로 명성을 쌓은 셜리 틸먼(Shirley M. Tilghman) 전 프린스턴대 총장은 “여성들의 과학·공학 진출과 지속을 방해하는 문화적 관행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회과학 연구가 25년간 이어져 왔지만, 남녀의 능력 차이를 나타내는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여성의 잠재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환경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새롭게 시사한다.

필자 역시 지난 35년간 기반 소프트웨어(SW) 및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연구자의 길을 걸으며 연구 성과의 기쁨과 함께 현실적 장벽을 체감해왔다. 여성과학기술인이 당당히 연구자이자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이유다. 이는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국가과학기술의 역량을 한 단계 더 높이는 핵심 전략이다.

정부 역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 정부는 대통령 공약을 통해 경력보유 여성 채용 촉진, 여성 벤처기업 투자펀드 확대, 여성과학기술인 역량 강화 및 경력 전환 지원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고용평등 임금공시제 도입, 여성 1인 가구 안전 보장 등의 정책은 여성들이 연구와 일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이런 정책이 실현된다면 더 많은 여성과학기술인이 연구실과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과학기술계 전반의 구조적 변화도 요구된다. 대통령은 AI,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미래차 등 국가 전략기술 분야에 과감히 투자하고, 연구자들에게 창의적·도전적 연구 환경을 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지역 자율 연구개발(R&D) 확대와 이공계 인재 처우 개선은 여성과학기술인들에게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오늘날 과학기술은 단순한 기술 성과를 넘어 사회적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기후위기 대응, 탄소절감, 장애인의 과학 접근성 보장, ESG 경영 등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전제로 해야 하며, 여성과학기술인의 시각과 참여가 반영될 때 더욱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

과학기술계에도 대중적 파급력을 지닌 융합 프로젝트, 일명 '케데헌'이 필요하다. 이는 K-팝의 세계적 성공처럼 기존 자산의 창조적 재조합을 통해 폭발적 성과를 창출하는 과학기술 융합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여성과학기술인이야말로 이러한 '케데헌'의 주역으로 활약할 수 있다.

이제는 여성과학기술인이 연구 현장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리더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인구감소 시대에 여성과학기술인의 성장은 대한민국 과학기술 성장의 핵심 요소다. 여성들이 연구실 안팎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더 큰 무대에서 당당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와 지원책이 절실하다. 무대에서 열창하는 여성 '케데헌'의 당당함과 자신감이 우리 여성과학기술인들에게도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임채덕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에어모빌리티연구본부장 cdlim@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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