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식에 나란히 선 3국 지도자의 모습은 미국과 서방에 대항하는 권위주의 독재자 간 밀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주도의 일극(一極) 체제가 흔들리면서 그 패권 도전에 나선 중국이 반서방 진영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세를 과시한 것이다. 신냉전 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본격적인 신호탄이란 해석이 나올 만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더욱 거칠어진 미국식 일방주의가 그런 세 결집을 더욱 가속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마다 제각각인 세 나라의 처지나 지향점을 살펴보면 당장의 편익을 위한 한시적 밀착에 불과하다는 분석에 무게가 쏠린다. 중국은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며 새로운 질서의 주도자가 되고자 한다. 전쟁과 도발로 고립된 러시아나 북한과는 그 처지가 확연히 다르다. 당장은 러-북과 함께하지만 그 침략성, 호전성에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기 위해 북한의 파병과 중국의 측면 지원이 절실하다. 하지만 북한에 대가를 지급할 여력이 충분치 않고, 중국에 국제질서의 주도권을 내줄 생각도 없다.
북한은 이런 중-러 사이에서 이익을 챙긴 가장 큰 수혜자다. 김정은에게 열병식은 중-러 지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제 다자무대 데뷔전이었다. 나아가 방중에 어린 딸을 대동해 후계 구도를 과시하기까지 했다. 러시아 파병으로 대가를 톡톡히 챙긴 데다 이젠 종전 이후를 내다보며 소원했던 북-중 관계를 개선하려 한다.이처럼 생각이 다른 세 정상에게 트럼프 대통령과의 잠재적 딜(거래)은 또 다른 변수다. 3국 정상 모두와 “아주 좋은 관계”라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푸틴 대통령과 회담했고, 시 주석과도 만날 것을 예고했다. 김정은에게도 끊임없이 대화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저마다 미국과의 흥정을 꿈꾸는 처지에서 배반과 이탈은 ‘모래성 3각 연대’의 예정된 미래일 수 있다.
지금 세계는 미국발 불확실성의 확산에다 중-러 강대국의 도전, 불량 정권의 도발까지 예측불허의 혼란 속에 있다. 향후 국제질서가 신냉전 체제가 될지, 다극(多極) 체제가 될지, 강대국 간 결탁 체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로선 정세를 예의 주시하고 자강의 힘을 쌓으면서 전략과 방책을 가다듬어야 하는 시기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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