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간 한국에서 배임죄로 기소된 사람의 수가 일본의 31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인구가 한국의 2배가 넘는 만큼 한국의 배임죄 기소는 그보다도 훨씬 많은 셈이다. 글로벌 무역질서가 급격히 재편되고 한국 경제가 성장의 벽에 부딪혀 과감한 투자, 산업 구조조정이 시급한 상황을 맞은 지금 기업인들의 손발을 묶는 배임죄를 폐지,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일 내놓은 배임죄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10년간 배임죄로 기소된 연평균 인원이 일본은 31명인 데 비해 한국은 965명에 달했다. 한국에서 배임죄로 고소·고발된 이들 중 실제 기소된 비율도 14.8%로 전체 형사사건 기소율 39.1%보다 현저히 낮았다. 기소 대상이 되지 않는 사안에 대한 무분별한 고소·고발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한국의 배임죄는 형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법 등 여러 법에 규정돼 있다. 또 주체를 ‘타인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규정해 임원뿐 아니라 일반 직원도 처벌 대상이 된다. 실제 손해로 이어지지 않은 위험, ‘미필적 고의’로 처벌되는 일도 적지 않다. 반면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은 고의성이 명백히 입증된 경우에만 배임죄로 처벌하고, 독일은 ‘기업의 경영상 판단’인 경우 책임을 면해 준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는 배임으로 인한 이득이 50억 원 이상일 경우 특경가법을 적용해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형량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의 배임죄 형량은 ‘10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 독일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이다. 배임죄 죄목이 없는 영미법 국가들은 형사가 아닌 민사로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꼭 필요한 경우 사기죄로 처벌한다.이재명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배임죄 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3차 상법 개정’보다 배임죄를 먼저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여당은 구체적인 법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상법·특경가법상 배임죄는 폐지하고, 형법의 배임죄에는 고의성, 손해 발생 여부와 관련한 규정과 정상적 경영판단을 면책하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는 게 재계와 법조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기업인의 과감한 투자, 창의적 경영을 가로막아 경제성장 동력을 약화시키는 배임죄 규정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손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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