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 주요 대선 주자가 인공지능(AI)을 국가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4일 AI 분야에 1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튿날 한 전 대표는 AI 인프라 구축에 150조원 등 총 200조원을 넣겠다고 맞불을 놨다.
대선 주자들의 호기로운 공약과 달리, 한국의 AI 생태계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딥시크(중국), 미스트랄AI(프랑스), 딥엘(독일) 같은 국가 대표급 AI 기업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해외 빅테크도 한국 투자엔 관심이 없다. 이들은 아시아 지역 AI 거점 사업장을 일본이나 싱가포르에 세운다. 국내에서 육성한 AI 인재가 한국을 떠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엔 마음에 드는 기업이 없으니, 해외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 AI연구소(HAI)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AI 인재 유출입지수는 2023년 -0.30에서 지난해 -0.36으로 하락했다. 인구 1만 명당 AI 전문가 0.36명이 해외로 빠져나갔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AI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정부와 기업의 투자가 경쟁국보다 부족한 탓도 있지만, 기업을 옭아매는 해묵은 규제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낮은 고용 유연성이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고용과 해고가 자유롭지 못하고 1주일에 52시간까지만 일을 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 몸값이 비싼 AI 인재를 대거 채용할 기업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지적이다. 한국에선 AI 인프라를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 데이터센터 같은 시설을 지으려면 복잡한 인허가 절차와 인근 지역 주민 반발 등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원격의료, 자율주행 등의 분야는 엄격한 법 규정 탓에 할 수 있는 사업이 제한적이다. 대선 후보들이 AI산업 육성에 나선 것은 평가해줄 만하지만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갖가지 규제를 정리하지 못하면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