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과 호수에 한바탕 비가 지나자, 계절은 산뜻한 초가을로 바뀐다.
붓을 들 만큼 멋진 풍광 펼쳐졌으니, 그 누군들 아직 누각에 오르지 않았으랴.
서늘한 가을 흥취를 타고, 서쪽 푸른 숭산(嵩山)으로 노닐고 싶어라.(暑氣時將薄, 蟲聲夜轉稠. 江湖經一雨, 日月換新秋. 有景堪援筆, 何人未上樓. 欲承凉冷興, 西向碧嵩遊.)
―‘초가을 비 갠 뒤의 저녁 풍경(조추우후만망·早秋雨後晚望)’ 제기(齊己·약 862∼937)
가을은 달력이 아니라 공기의 결로 찾아온다. 슬금슬금 더위는 가라앉고 밤이면 잦아지는 벌레 소리에 사람들은 슬며시 가을을 실감한다. 한바탕의 비 뒤끝에 세상 풍경은 마치 맑은 물에서 막 건져 올린 듯 새로워진다. 시인은 그 찰나를 포착한다. 비 갠 강호를 바라보니 해와 달조차 가을로 갈아입은 듯하다. 그래서 시인은 붓을 들고 싶었던 게다. 상큼한 경물을 앞에 두고 그 누군들 무언가를 쓰고 또 그려보고 싶지 않으랴. 누각에 오르는 일은 새 경치의 조망을 넘어 새로운 자신을 돌아보는 일일 것이다. 시인이 그리는 숭산은 현실의 산이 아니라 마음의 향방(向方)인지도 모른다. 서늘한 가을의 기운을 받으며 일체의 번뇌로부터 벗어나 오도(悟道)의 길을 향하는. 제기의 속명은 호득생(胡得生), 당 말엽의 저명한 시승(詩僧)이다. 세상을 등지고 면벽참선(面壁參禪)에 정진하는 중에도 때로 시로 수행하며 지나는 족적마다 불경과 함께 풍경을 읊조렸다. 시승들에게는 흔한 일이었다.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

2 weeks ago
8
![[사설] 檢 항소 포기, 대장동 일당과 李 대통령에 노골적 사법 특혜 아닌가](https://www.chosun.com/resizer/v2/MVRDCYLFGU2DOYLCGEZTCZRXME.jpg?auth=e7208408e32f3c86fca96d1cc26ab946aa0573ff3afc88149eaf47be452d2014&smart=true&width=4501&height=3001)
![[팔면봉] 검찰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여권 인사도 놀란 듯. 외](https://it.peoplentools.com/site/assets/img/broken.gif)
![[사설] 권력 앞에 검찰권 포기, 용기 있는 검사 단 한 명 없었다](https://www.chosun.com/resizer/v2/GRSDOM3GGRTDMMZVMIZWEMRSGI.jpg?auth=3660099caccde3b5cc42f8a35fb1d3d3ed7245720ce0ddba78c999c2772ee0ad&smart=true&width=399&height=255)
![[사설] 국힘 대표 부인이 김건희에게 가방 선물, 민망하다](https://www.chosun.com/resizer/v2/MVQTQNLDMJSDONRTMVQWINDBG4.jpg?auth=8141846de3d24a96723f9b1cff26e76f746dd63a88bb3beb44b86fbf01793855&smart=true&width=6673&height=4246)
![[朝鮮칼럼] ‘진보 정권의 아이러니’ 재현하지 않으려면](https://www.chosun.com/resizer/v2/VXXDKUIJUJCOLIT4M4DA47BFKY.png?auth=47d5c0a683690e4639b91281f2cab5fd3b413998a70d2183f12a92e1f1b8119d&smart=true&width=500&height=500)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87] K팝, 그래미상 ‘빅4′ 고지 오를까](https://www.chosun.com/resizer/v2/5XHK7PZ56NHTTKH7COJFQ4M54Q.png?auth=664876bab5cee8d9c73896a7d01b64f27386130e62bef9ae4289fdb3837c803b&smart=true&width=500&height=500)
![[동서남북] 원산·갈마 리조트에서 이산가족 상봉을](https://www.chosun.com/resizer/v2/273GIBFF3NCHBC5LVGUUIDK3GM.png?auth=2dc473a67ab5cc661f563ad05832554564124579b2d90352af8c3782f593b38f&smart=true&width=500&height=500)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95] 밥그릇 심장](https://www.chosun.com/resizer/v2/JZ2DPK7OZBANLBLB5SS5OH3S6I.png?auth=9fb621a8d43376974dd4c21736aba72e87fd3876911d9303e1df9f5adebb9cb7&smart=true&width=500&height=500)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