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작가·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 아이가 생기니 참 많은 것들이 바뀐다. 난생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중 하나가 ‘제철 음식’이다. 얼마 전 처음으로 내 돈을 주고 옥수수를 샀다. 예전에는 배가 고프면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과자를 사 먹기 바빴다. 옥수수는 엄마가 챙겨주는 게 아니고서야 굳이 사서 먹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 ‘엄마’가 되니, 지구별 신입인 이 작은 생명체 아이에게 태어나 처음 맛보는 여름의 달달함을 알려주고 싶었다. 계절을 따라 수박, 자두, 복숭아가 부지런히 냉장고를 채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던 달력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꼬물거리던 아기는 이제 제법 사람이 되어 걷고, 뛰고, 말도 곧잘 따라 한다. 제 얼굴만 한 수박을 입에 넣고 야무지게 잘도 오물거린다. 옷은 금세 수박 물로 흠뻑 젖는다. 아이 앞에 낱말 카드를 펼쳐 놓고 “수! 박!” 하고 천천히 따라 읽어 준다. 빨갛고 차갑고 달콤한 이 과일의 이름을, 여름이라는 계절의 맛을 그렇게 또박또박 새겨준다. 에어컨 바람 아래 나란히 앉아 수박을 먹고 있자니 문득 ‘여름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여름을 났지만, 그것들은 진짜 여름이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여름을 놓쳐 왔다는 것을 말이다. 불쑥 어릴 적 여름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시절 여름은 내게 곧 여름방학이었다. 어디 대단한 해외 여행지가 아니어도, 종이 지도를 펼치고 꽉 막힌 도로에서 몇 시간씩을 갇혀 있더라도, 해수욕장과 튜브만 있다면 그 이상의 휴가는 없었다. 개학 무렵 몰아서 하던 방학 숙제가 유일한 고난이라면 고난이었을까. 일렁이는 햇살 아래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낮잠을 자고 일어나 엄마 밥을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고 있으면 다시 또 과일 상이 차려지던 시절. 박박 긁은 수박에 사이다를 통째로 부어 먹던 화채가 그땐 뭐가 그리 좋았는지. 문득 가져본 적도 없는 시골집이 그리워 숙소를 뒤졌다. 하지만 여름 한복판 성수기의 숙소는 터무니없이 비쌌고 그마저도 대부분 만실이었다. 설령 예약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두 돌도 안 된 아기를 차에 태우고 도로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나의 여름을 완성한 것은 바다도, 여행도 아니었다. 계절을 놓치지 않고 자식들 손에 쥐여주려 애쓰던 부단한 부모님의 손길이었다. 어쩌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여행보다는 계절을 기억...
부모가 된 뒤 생긴 ‘계절 달력’… 아이와 함께 다시 만나는 여름[2030세상/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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