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노스웨스트항공의 DC-9 여객기가 이륙 중 추락해 네 살 소녀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보잉 747 설계자인 조 서터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당시 만석에 수하물도 가득 찬 노스웨스트 항공기를 “돼지우리처럼 꽉 찼다”고 표현했다. 추락 원인은 단순한 조종사 실수였다. 최근 발생한 에어인디아 참사는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항공기 기종이 보잉이란 점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다.
보잉은 두 건의 737 맥스 사고 이후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다. 보잉은 상업용 항공기 제조업체이자 주요 국방 계약업체로서 미국 정부엔 ‘망할 수 없는 기업’이다. 지정학적 갈등이 다시 고조되는 가운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전선을 열었고,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격화하고 있다.
골칫거리로 전락한 보잉
보잉은 지난 3월 미 공군의 신형 F-47 전투기 계약을 수주했다. 보잉 최고경영자(CEO)는 이 계약이 회사를 재건하기 위한 일종의 ‘자선 계약’이라는 의견에 불쾌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 같은 자선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보잉이 미국 정부에 골칫거리로 남아 있는 이유는 두 번째 맥스 사고(157명의 사망자를 낸 2019년 에티오피아 항공기 참사) 원인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보잉은 첫 사고(189명의 사망자를 낸 2018년 인도네시아 라이온에어 추락 사고) 이후 시스템 오류에 어떻게 대처할지 맥스 운영자들에게 지침을 내렸다. 그런데도 두 번째 사고가 난 원인은 보잉의 설명이 부실했거나 에티오피아 조종사들이 그것을 따르지 않은 것 중 하나다. 조사 책임을 맡은 에티오피아 정부는 조종사 과실 부분을 흐지부지 넘겨버렸고, 이에 대해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와 프랑스 항공당국은 이례적으로 반박 성명을 내는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이 사고로 보잉의 핵심 사업인 737 공급과 생산 체인은 마비됐고, 보잉과 관련한 산업 전반에 심각한 여파를 남겼다.
F-47 계약, 보잉 살릴까
이 같은 혼란은 항공우주산업 전체에 번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을 방어하기 위해 무기가 대규모로 소모되고 있어 항공기 수요는 급증하고 있는데 산업은 그 수요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전 칼럼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금융 전문가인 버나드 바로크를 동원해 미국 산업 기반을 재정비한 사례를 인용한 적이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바로크를 등판시킨 것은 전쟁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2차대전 당시 히틀러와 도조도 미국의 산업 잠재력을 두려워했고, 전쟁 준비를 서둘렀다.
오늘날 중국 외교관들의 뒷담화나 러시아 인사들의 발언을 살펴보면 미국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부담으로 재무장을 제때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적들을 위축시키던 ‘신비감’조차 잃어가고 있다. 조각 하나에 불과할 수 있지만, F-47 전투기 계약은 미국 정부가 이미 보잉 재건에 개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더 큰 비극이 오기 전, 또 하나의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을 때 막아야 할 것이다.
원제 ‘Boeing’s Troubles Are America’s Troub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