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정민은 스크린 밖에서도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배우로서 수많은 캐릭터를 살아내는 동시에, 출판사 대표로서 책을 세상에 내놓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2020년 설립한 출판사 '무제(無題)'가 벌써 5년 차에 접어들었다.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박정민은 "흑자를 내고 있다"며 출판사 근황을 전했다. 그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직원 한 명을 더 뽑고 조금 더 책에 투자하면서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고 말했다.
그가 꿈꾸는 출판사는 단순히 이윤을 남기는 곳이 아니다. 박정민은 "세상에 꼭 나와야 할 책, 이야기할 만한 주제,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며 "'착한 회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배우와 출판사 대표라는 두 얼굴의 삶은 그의 일상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박정민은 "너무 바쁘게 지냈다. 매일 출근하는 회사원처럼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 현장에서는 배우가 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스태프들이 도와주지만, 출판은 내가 모든 걸 직접 관리해야 한다. 매니지먼트의 입장이다. 이를 통해 책이라는 매체 자체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 이 일은 이제 나에게 또 다른 직업처럼 느껴진다. 인생의 큰 환기였고, 연기를 할 때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출판계에서의 위치를 묻자 그는 "아직도 조심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굳이 비유하자면 연애 프로그램에서 '메기' 같은 존재일 수 있겠다. 물을 흐리고 헤집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며 인지도가 있는 배우가 출판에 뛰어든 것에 대해 스스로 경계했다.
그는 출판계의 질서를 뒤엎을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박정민은 "선배 출판인들이 걸어온 길을 뒤집을 생각은 전혀 없다. 책을 만드는 과정, 홍보하는 과정 모두 기본을 충실히 따르려 한다. 제가 대표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앞에 나서야 하는 부분만 감당할 뿐이다. '당신들이 다 틀렸다, 내가 새로운 걸 보여주겠다'는 식의 접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출판계에서 느낀 연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박정민은 "도움을 주고받는 분들이 있다. 저를 보듬어 주시는 출판인들도 계시다. 덕분에 조금은 소속감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박정민은 독자들과의 만남에서도 깊은 배움을 얻었다. 시각장애인인 아버지에게 자신이 출판한 책을 선물할 방법을 고민했던 그는 오디오북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독자와의 대화는 그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처음에는 제가 그분들을 너무 '장애인'으로만 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이어 "시각장애인 독자분이 '왜 우리한테 자꾸 잘해주려 하냐, 우리도 고객이다. 좋은 책이면 우리도 산다'고 하셨다. 그때 과한 친절을 베푸는 태도가 오히려 잘못일 수 있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 같은 사람이고, 소통하는 존재인데,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경계를 만든 것 같았다"며 "독자들을 통해 세련된 방법을 배웠다"고 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