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지 "가족·가난·인복이 나를 만들어…20승, 끝 아닌 시작"

1 hour ago 1

박민지가 지난 3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GC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롯데오픈 2라운드 10번홀에서 버디를 잡은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KLPGA 제공

박민지가 지난 3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GC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롯데오픈 2라운드 10번홀에서 버디를 잡은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KLPGA 제공

단 1승.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역대 최다 우승인 통산 20승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을 남겨두고 지난 2년간 박민지(28)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숙제였다. 많은 고비와 눈물을 거쳐 20승을 달성한 지 이제 한 달, 박민지는 ‘끝’이 아닌 ‘시작’을 말했다. 지난 2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GC에서 만난 그는 “그때 우승했던 박민지는 이미 없다. 우승은 잊고 앞으로 나아갈 자신감만 가져왔다”며 “더 많은 우승을 해낼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노련미 익힌 2년

KLPGA 투어 ‘대표 독종’ 박민지가 돌아왔다. 지난 5월 31일 SH수협은행 MBN 여자오픈(총상금 10억원)에서 우승하며 투어 통산 20승을 달성해 ‘전설’ 구옥희, 신지애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박민지는 “주변의 기대와 응원에 보답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KLPGA 투어는 ‘민지 천하’였다. 송곳 같은 아이언 샷과 몰아치기로 2년 연속 각각 6승씩 쓸어 담는 박민지를 막을 선수가 없었다. 특히 연장전에서는 “공이 죽지 내가 죽냐”며 독하게 핀을 공략해 상대를 압도했다. 2023년에도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연패 등 2승을 올렸다.

하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안면 3차 신경통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얼굴을 칼로 찌르거나 강력한 전기가 흘러가는 듯한 고통이 수 초에서 수 분간 지속되는 희귀 난치성 질환이다. 예고 없이 닥치는 죽을듯한 고통에 박민지의 기세가 꺾였다. 작년에는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무관의 시즌’을 보냈다.

그래도 박민지는 매 순간 치열하게 부딪쳤다. 술을 한잔도 입에 대지 않았고 매일 8시간은 자려고 노력했다. 유산소와 근력 운동은 취미가 됐을 만큼 매달렸다. 박민지는 “신나는 음악과 함께 달리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이제는 운동 자체를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후배들도 그에게 건강한 자극제가 됐다. “이룬 게 없는 후배들은 정말 독하게 연습하는데 저는 시합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느슨해져있었어요. ‘나는 이만큼 이뤘다’는 자만에 빠진거죠.”

차곡차곡 쌓인 노력은 강인함을 더해줬다. 박민지는 “우승이 나오지 않는 동안 많이 울고 화도 냈지만 많은 경험과 넓어진 시야를 얻었다”며 “아직 예전 경기력의 100%는 아니지만 노련함이 더해져 더 강한 선수가 됐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일 일본에서 끝난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어스 몬다민컵에서는 박민지 특유의 뒷심과 몰아치기가 빛을 발했다. 첫날 4오버파 91위로 출발했지만 공동 5위로 대회를 마쳤다. 특히 최종라운드에서는 후반 9홀에만 7타를 줄이며 개인 통산 9홀 최소타 기록을 썼다. 박민지는 “첫날 경기를 마치곤 초청해 주신 분들께 죄송해서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돌아봤다. 이 대회를 마치고 곧바로 출전한 롯데오픈 1라운드에선 네 번째 홀인 13번홀(파4)에서 ‘양파(더블파)’를 치고도 2언더파로 마무리하는 저력을 보였다.

◇2연패 이룬 포천힐스서 새 역사 쓸까

오는 10월 박민지는 프로 데뷔 10주년을 맞는다. 박민지는 “통산 20승, 10년을 채운 프로답게 성숙한 선수가 돼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며 “골프가 개인 종목이지만 개인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늘 새기고 있다”고 했다. 세상 무서운 것 없던 그에게서 자신의 성과가 혼자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아는 깊이가 엿보였다.

다음 목표는 BC카드·한경 KLPGA 챔피언십이다. 2년 연속 우승했던 대회가 올해 메이저로 승격되면서 박민지는 KLPGA 투어 최초 커리어 그랜드슬램과 통산 최다승 단독 1위를 한 번에 달성할 기회를 얻었다.

지금의 박민지를 만든 세 가지를 묻자 그는 “가족, 가난, 인복”을 꼽았다. “집안 형편상 골프를 무조건 잘해야만 하는 환경이었기에 스스로를 지독하게 몰아붙였어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어려운 순간마다 NH투자증권 등 후원사와 매니저, 선생님 등 많은 분이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돈을 열심히 모으고 있어요. 전 앞으로 더 잘해야 해요. 제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겁니다.”

청라=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