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세대를 위한 약속, 안전한 방폐물 처분체계 구축[기고/권이균]

2 weeks ago 8

권이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

권이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무탄소 전원의 확보는 지속가능한 발전과 풍요로운 미래를 보장하는 핵심 과제이다. 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자력발전은 무탄소 전원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쌍두마차로 여겨진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원자력발전이 무탄소 전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안전한 처분이 필요조건이다.

현재 국내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 누적량은 1만8000t을 넘어섰다. 원전 내 임시 저장시설은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이는 원자력발전의 안정적 운영을 위협하는 현실적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 고준위 방폐물의 안전한 처분 체계 없이는 원전의 지속적 운영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최근 의미 있는 전환점을 맞았다. ‘고준위 방폐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2050년까지 중간저장시설, 2060년까지 최종 처분시설 확보라는 명확한 국가 목표가 설정됐다. 또한 최근에는 심부지층에서 처분 기술을 개발할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 부지로 강원 태백시가 결정되면서, 그동안 지연돼 온 사업들이 본격적인 출발점에 서게 됐다.

고준위 방폐물 심층처분은 수십만 년 동안 처분 안전성을 보장해야 하는 초장기 다학제적 과학기술 프로젝트다. 처분 시스템을 구성하는 인공방벽과 천연방벽 모두 고준위 방폐물을 최소 수십만 년 이상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철저한 지질조사는 물론이고 심부지층에 대한 이해와 지질 특성에 대한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 처분 대상 암석의 안정성, 지하수 흐름, 지화학적 조건, 암반공학적 특성 등을 과학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처분시스템을 설계해 종합 안전성을 입증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러한 조사와 검증만으로도 수십 년이 소요된다. 여기에 주민 수용성과 사회적 신뢰까지 확보해야 하므로, 더 이상 미룬다면 2060년까지 최종 처분시설 확보라는 목표 달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

특별법은 부적합 지역 배제, 주민 의견 확인, 기본조사, 심층조사, 주민투표를 통한 최종 후보 부지 선정 등 단계적 절차를 체계적으로 규정했다. 이는 부지 선정 과정의 과학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무엇보다 국민 신뢰 확보가 관건이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수십 년간 과학적 검증과 주민과의 적극적 소통을 통해 최종 부지를 확정했다. 우리 역시 처분 부지 확보 과정에서 모든 조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단계별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특히 태백에 구축될 연구용 지하연구시설은 한국형 처분기술 개발과 처분시스템 설계 기준 마련의 산실이 돼야 한다. 동시에 미래 전문 인재를 양성하고 국민이 직접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는 소통의 장 역할도 해야 한다.

고준위 방폐물 처분은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이자 에너지 안보를 굳건히 하는 핵심 열쇠다. 지금의 정책 결정과 실천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의 안정적 에너지 공급과 산업 발전, 국민 안전을 좌우한다. 특별법과 기본계획이라는 제도적 토대 위에서 과학적 검증과 사회적 신뢰를 꾸준히 쌓아간다면 고준위 방폐물 처분사업은 사회 구성원의 합의를 통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짊어진 고준위방폐물 처분의 책임은 단순한 기술적 과제를 넘어 미래 세대와의 약속이다. 고준위 방폐물 안전처분이라는 마지막 퍼즐을 맞춘다면, 원자력은 비로소 탄소중립 시대의 든든한 동반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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