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 대 랜드마크] 자연과 건물이 하나로…도심, 숲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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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 대 랜드마크] 자연과 건물이 하나로…도심, 숲이 되다

천일야화, 천년의 세월, 천 냥 빚…. 숫자 ‘천’은 ‘만’과는 달리 들으면 실현 가능한 수치처럼 들린다. 2022년 ‘천 그루의 나무’를 주제로 한 건물이 중국 상하이에 들어서 화제가 됐다. 나무를 건물 앞 정원에 심은 것도 아니고, 건물 지붕에 심은 것도 아니고, 경사진 건물을 이루는 각각의 기둥 위에 심어 마치 나무로 가득 찬 산의 모습처럼 장관을 이룬다.

120년 밀가루 공장의 재탄생

미국 뉴욕 리틀아일랜드를 설계하고, 우리나라 노들섬 프로젝트에 당선된 세계적인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이 설계했다. 상하이에 있으며 호텔, 사무실, 쇼핑센터의 복합 기능을 갖춘 건물이다. 청나라 말기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중국 국가자본으로 세운 120년 된 밀가루 공장 건물이 폐허처럼 남아있는 쑤저우강 옆 버려진 땅에 2010년 상하이엑스포에서 영국관을 설계한 헤더윅의 기발한 상상력을 신선하게 여긴 톈안그룹이 그를 설계자로 선정해 건물 설계를 맡긴 것이다.

그는 대지가 길고 중간에 정부 소유지가 대지를 가르고 있고, 대지 내에 보존해야 하는 역사 유적이 있는 제약을 고려하고 황산에 인접해 있고 쑤저우강변이라는 점에 주목해 나무로 뒤덮인 두 개의 인공 동산을 제안했다. 접근이 어려운 산업공간을 도시로 끌어들이기 위해 전형적인 타워 건물 대신 부지를 가로지르며 솟아오르는 건물 볼륨이 되도록 설계했다. 기존 도시와는 다른 새로운 지형의 건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상하이 ‘천 그루의 나무’ 빌딩 전경. 나무가 건물을 덮는 방식이 아니라 나무를 화분에 심는 것 같은 방법을 선택했다.  박성준 건축사 제공

상하이 ‘천 그루의 나무’ 빌딩 전경. 나무가 건물을 덮는 방식이 아니라 나무를 화분에 심는 것 같은 방법을 선택했다. 박성준 건축사 제공

이때 그는 나무를 건물과 연결하는 방법으로 담쟁이덩굴처럼 나무가 건물을 덮는 방식 대신 화분에 나무를 심는 것 같은 방법을 선택했다. 나무가 자랄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 화분과 같은 구조물을 마련해 식재하는 방식이다. 그래야 나무가 사람들 가까이에서 자연의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계절마다 다른 꽃을 즐기고, 물들어가는 잎을 보며 계절감을 바로 옆에서 느낄 수 있도록 삶을 정서적으로 안정시키는 요소로 나무를 사용하고자 했다.

회색 위의 녹색, 쉼터의 탄생

나무와 건물이 잘 어우러진 건물의 원조 격으로는 에밀리오 암바스가 설계해 1995년 완공된 일본 후쿠오카의 아크로스가 있다. 아열대 기후인 아르헨티나 출신 산업디자이너이면서 건축가인 암바스는 녹색건축의 아버지, 정교한 지상낙원의 창조자로 일컬어진다. 그는 ‘건축가는 건물로 덮인 도시공간을 사람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회색 위의 녹색’이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후쿠오카의 ‘아크로스’는 인접한 공원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수직정원의 모습으로 설계됐다.  한경DB

후쿠오카의 ‘아크로스’는 인접한 공원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수직정원의 모습으로 설계됐다. 한경DB

아크로스의 디자인은 결과적으로 근린공원에 건물을 짓겠다는 정부에 반기를 든 지역민의 민원을 해결했다. 13층 건물은 피라미드 모양으로 셋백되며 한층 한층 테라스를 만들고, 그 테라스에는 각종 나무를 심었다. 건물 벽면에도 작은 발코니를 만들어 또 나무를 심었다. 층층이 이어진 엄청난 규모의 새로운 숲은 말 그대로 인접한 공원이 연속되는 수직정원이 됐다. 공원에서 야외 계단을 통해 건물 테라스로 오를 수 있고, 건물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데 4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하나의 새로운 도심 산책로를 조성한 것이다.

건물을 지은 지 30년이 흘렀다. 최근의 모습은 더 극적이다. 처음 건설됐을 때의 나무 76종은 120종으로 자연 번식했고 3만7000그루의 나무는 5만여 그루로 늘었다. 건물은 이제 나무로, 숲으로 완전히 감싸인 모습이 됐다.

도시의 숨통을 틔우자

만일 암바스와 같이 자연이 우선이며 건물은 인간이 만드는 자연의 한 요소라고 주장하는 건축가들만 지구상에 활동한다면 지금 지구의 모습은 어떨까. 회색빛으로 가득한 도시공간은 분명 바뀌어 있을 것이다. 또한 천 그루의 나무 건물처럼 사람과 나무를 가까이하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 모인다면 어떨까. 콘크리트 빌딩으로 가득한 지금의 도시보다는 훨씬 나은 미래의 도시 환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테레사 수녀의 말이 생각난다. 지금은 개개의 건물에 나무를 심는 작업이 하찮고 작은 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큰 내딛음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천 그루의 나무 건물과 아크로스 건물에서 보여지는 작은 비전이 콘크리트의 회색빛 도시에 숨통을 터주는 좋은 사례로 남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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