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에서 사라진 명태, 굿즈로 탄생[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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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우리 곁에 있다가 사라진 것이 있고, 다른 형태로 변모해 이어지는 것도 있다. 며칠 전 서울역 인근 전통 굿즈 판매점에서 반가운 물고기를 만났다. 흔한 생선이었으나 일시에 우리 바다에서 사라진 명태가 액막이 굿즈로 환생해 있었다. 다양한 디자인으로 제작돼 진열대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명태 액막이 굿즈가 얼마나 만들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엄청난 인기를 확인했다. 명태 전성시대가 다시 도래한 듯했다. 2008년 공식 어획량 ‘0’을 기록한 후 우리 바다에서 더 이상 잡히지 않는 명태가 액막이 굿즈로 재탄생한 이유는 뭘까.

한자로 ‘厄(액)’은 재앙, 불행, 멍에, 사나운 운수 등으로 해석된다.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독한 기운 또는 사나운 운수’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선조들은 알 수 없는 불행이 닥쳤을 때 주로 액이란 개념으로 이해하고 설명해 왔다. 액은 귀신이나 어떤 신적 개념과는 다른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질병이나 사고가 나도록 만들기도 하고, 인간관계를 갈등과 파국으로 이끄는 사악한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겼다. 액막이 연날리기, 제웅 버리기, 삼재 부적, 액풀이요, 액막이굿 등 각종 액막이 풍속을 통해 액에 대한 관념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액을 막기 위해 널리 쓴 것은 북어다. 고사나 굿이 끝나면 대 위에 액막이 북어를 걸어놨다. 신장개업한 가게, 어선, 운송업을 하는 트럭 등에서 무사고를 기원하며 지금도 널리 활용한다. 북어는 눈을 감지 않으니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액을 한눈팔지 않고 감시할 수 있고, 벌어진 입으로 액을 위협해 쫓아내고, 깨물어서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민속학자들은 설명한다. 뜬 눈과 벌린 입이라는 액막이의 조건은 여타 물고기도 충족한다.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어서 눈을 뜨고 있고, 입을 벌린 형태의 말린 생선은 다른 어류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숱한 생선 중에서 하필 북어인가라는 물음에 만족스러운 답변은 아니다.

북어가 신앙 의례품이 될 수 있었던 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장기간 상하지 않으며 비린내도 거의 나지 않기 때문이다. 명태 못지않게 많이 잡혔던 조기를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조기를 염장해 말린 굴비를 액막이용으로 사용한다면 비린내가 진동하고, 습하고 더운 날씨에는 얼마 못 가서 곰팡이로 뒤덮일 게 분명하다.

우리나라 최대 황태덕장인 강원 인제군 용대리에 황태해장국 밀집 지역이 있다. 그중 한 음식점의 주방 입구에는 말린 황태 한 마리가 걸려 있는데 1976년에 생산한 황태라고 적혀 있다. 잘 건조된 황태는 쉽게 부패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여항의 평민은 명태로 포를 만들어 제사상에 올리고, 가난한 가계의 유생 또한 제물로 올릴 수 있으니, 흔한 것이면서 귀하게 쓰인다”고 했다. 쉽게 구할 수 있고, 비린내가 나지 않으며 부패하지 않으니, 북어보다 적합한 생선이 어디 있겠는가.

액막이 북어가 예쁜 디자인으로 탄생해 인테리어 용품으로 유행하고 있다. 명태는 우리 바다에서 사라졌지만 명태 문화는 남았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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