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숨지면 ‘공소권 없음’ 수사 종결돼
형벌 목적의 재판 절차는 중단돼야 맞지만
혐의 유무 밝히는 수사까지 그만둔다면
피해자 보호-피의자 명예회복 둘 다 막아
유명인 성범죄 의혹이나 나라를 뒤흔든 경제 사범에만 한정된 일도 아니다. 포털 사이트에 ‘가해자가 죽었는데’를 검색해 보시라. 사기부터 교통사고까지 피의자의 선택 때문에 하루아침에 ‘공소권 없음’을 마주한 피해자들의 당혹감을 확인할 수 있다.
피의자가 사망한다고 반드시 수사를 종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수사기관은 마치 법이 그렇게 정해서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피의자가 죽으면 수사를 그만하라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 재판 중 사망하면 공소를 기각하라고만 정해뒀다. 형사재판의 목적은 피고인에 대해 유무죄를 가리고 유죄인 자에게 국가공권력으로 형벌을 가하는 것이다. 형벌을 가할 대상인 피고인이 사망하면 재판을 계속할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니 피고인 사망 시 재판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공소 기각하는 것은 이치에 맞다.
그러나 수사 중인 경우는 다르다. 피의자 사망 시 공소권 없음은 법무부령인 ‘검찰사건사무규칙’ 제115조와 행정안전부령인 ‘경찰수사규칙’ 제108조를 근거로 하는데, 시행규칙인 부령은 법이 아니라 행정입법이다. 법과 동일한 수준의 규범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검찰사건사무규칙과 경찰수사규칙의 법규성을 충분히 존중하더라도, 이 규칙이 피의자가 사망하면 수사를 그만하라는 규정은 아니다.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해 수사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피의자는 인정해 사망할 수도 있고 억울해 사망할 수도 있다. 형사사건과 무관한 이유로 사망하기도 한다. 피의자가 사망했다고 수사 대상이었던 실체적 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검사와 사법경찰관이 ‘수사, 공소 제기, 공소 유지’에 관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이 말은 수사와 공소는 별개의 단계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차피 공소 기각이니까 아예 수사도 안 하겠다”에는 법적 근거가 없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계속해봤자 형사처벌이라는 성과로 이어질 수 없는 수사를 그만하고 싶을 수는 있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공소 제기 및 형벌권 행사라는 결과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서, 혐의 유무를 밝히는 수사 단계의 노력까지 무조건 그만둬서는 안 된다.
피의자가 사망하면 그대로 수사를 종결하는 지금의 관행은 시민에게 반드시 불이익하다는 문제도 있다. 시민은 피의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일단 피의자라고 항상 유죄가 아니다. 수사를 해야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는지, 억울하게 고소를 당했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수사를 받다가 죽으면 내게 씐 누명도 영영 벗겨지지 않는다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억울하고, 또 위험한 일인가. 피해자 입장은 더 암담하다. 범죄 피해자는 공권력이 가해자의 잘못을 잘 수사하고 밝혀내어 사법정의를 실현해 줄 것을 기대해 가해자를 고소한다. 사적 자력구제를 금하고 국가가 수사와 처벌을 독점함은 국가가 책임지고 피해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해자가 죽으면, 수사기관은 그사이 진행한 수사 결과 가해자의 혐의가 인정됐는지, 아직 판단이 가능할 만큼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는지, 그렇다면 지금까지 수사에서 밝혀진 사실은 무엇인지 전혀 알려주지 않고, 그 모든 책임에서 편의적으로 손을 뗀다. 피해자에게 남는 것은 ‘공소권 없음, 수사 종결’이라는 한 줄뿐이다.공소권 없음과 수사 종결은 수사력의 낭비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수사력 낭비란 무엇인가. 수사를 계속해 얻는 공공의 이익, 수사로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야 지켜지는 권리, 수사 결과가 알려짐으로써 수호되는 사회적 가치, 수사기관이 판단을 내려야 실현되는 사법정의가 있다면, 그 수사의 계속을 수사력 낭비로 볼 수 있을까? 나중에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피의자 사망 시 수사 종결은 당연하지 않다. 죽음으로 끝나버린 사건을 계기로, 수사력 절감과 공소 제기 외의 가치를 고민해야 할 때다.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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