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정’ 명분 아래 시장에 거래 멈춤 신호
文 정권 부동산 정책 실패 부활한 듯 데자뷔
규제 반복 통한 신뢰 흔들, 자산 양극화 심화
실수요자 내집 마련 어렵고 임차 시장 불안정
이번 대책은 투기 억제를 명분으로 서울 전역과 수도권 일부 지역을 다시 규제지역으로 묶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40%로 제한했다. 그 결과 근로소득을 바탕으로 한 실수요자조차 대출을 통한 주택 구입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예컨대 맞벌이 중산층이 10억 원짜리 아파트를 사려면 최소 6억 원 이상의 자기자본이 필요하다. 이는 ‘지금은 무리하지 말고 현금을 더 모아라’라는 신호와 다름없다. 25억 원 이상 주택 거래에는 2억 원까지만 대출이 허용된다. 이는 23억 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한 부자만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구조다. 정부가 사실상 부유층 중심의 시장을 표명한 셈이다. 6년 전 대출 규제가 15억 원대 초고가 아파트를 기준으로 했다면, 지금은 초고가 아파트의 기준을 25억 원으로 공식화한 것 같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의 확대와 2년 실거주 의무 부과는 직장 이동이나 자녀 교육 등 현실적 변수에 대응할 수 있는 이동의 자유를 제약한다. 전세대출과 신용대출까지 동시에 규제되면서 실수요자는 과거처럼 전세를 발판으로 내 집 마련을 꿈꾸기 어려워졌다. 과거 전세는 무주택자가 집을 사기 전 잠시 머무는 ‘주거 사다리’로 기능했다. 그러나 지금의 전세는 갭투자 전략의 도구로 바뀌었다.
한편, 규제지역 재지정으로 양도세 중과가 부활하면서 주택을 팔수록 세후 차익이 줄어드는 구조가 됐다. 정부가 “보유세나 거래세 완화는 추후 검토하겠다”라고 밝힌 점도 시장의 불안을 키운다. 매도자는 세제 변화의 시점을 예측할 수 없으니 거래를 미루게 되고, 시장의 유동성은 더욱 위축된다.이번 대책은 과거의 잘못된 정책이 되살아난 듯한 데자뷔를 떠올리게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시행된 ‘15억 원 초과 초고가 주택의 주택담보대출 전면 금지’ 조치가 대표적이다. 당시 정부는 투기 억제를 내세웠지만, 세계 주요 선진국 가운데 ‘주택 가격만을 기준으로 대출 자체를 금지한 사례’는 없었다. 결과는 예측과 달랐다. 규제는 투기를 억제하기는커녕 가격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고가 주택 시장은 현금 부자 중심의 별도 시장으로 분리됐고, 실수요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15억 원 이하 아파트로 몰렸다. 이 과정에서 서울의 평균 매매가격은 15억 원에 가까울 만큼 급등했다. 반면 15억 원 이상 고가 아파트는 현금 부유층 중심으로 고착되면서 현재 상위 20% 서울 주택의 평균 가격이 32억 원대에 이른다. 불과 6년 전 ‘15억 원 초고가 주택’이 정말 초고가 주택이 맞았나 싶을 정도다.
정부는 불과 한 달 전 ‘9·7 공급 대책’에서 공공택지와 정비사업 확대를 약속했다. 하지만 착공 일정이나 세제 연계 방안은 구체화하지 않았다. 공급은 착공 후에도 3년 가까이 걸리는 장기 과제인데 수요 억제 조치는 즉각 시행되니 시장은 ‘비대칭 신호’를 받는다. 이 사이 전세 공급은 줄고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세 물량 감소와 대출 규제가 맞물리면서 월세 중심으로 임대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이는 현금 흐름을 원하는 임대인과 대출 제약에 따른 임차인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2025년 8월 기준 서울의 임대차 거래 중 약 60%가 월세이며, 평균 월세는 103만 원에 이른다. 결국 실수요자는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찾기 힘들어지고, 임차시장의 불안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책의 정치적 의도’가 아닌 ‘통계의 언어’다. 거래량, 착공률, 전세 공급량, 실수요자의 LTV 접근성 등 구체적 데이터를 근거로 시장을 설계해야 한다. 세대별·소득별 특성을 반영한 실수요 중심의 금융 지원과 공급정책을 더욱 정교하게 설계하고, 강화해야 한다. 주택시장은 결코 정책의 실험장이 되어선 안 된다. 그것은 국민 자산의 토대이자 삶의 질을 결정짓는 민생의 핵심 축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마디, 한 번의 규제가 가계의 부를 좌우하고, 세대 간 자산 격차를 확대시킨다. 과거의 통계는 이미 냉정한 교훈을 남겼다. ‘주택시장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했을 때 그 결과가 정책 의도와 달리 시장 왜곡과 문제의 심화를 초래했다면 이는 명백한 정책 실패에 대한 통계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의 통계를 직시하고 그 데이터로부터 교훈을 얻는 일이다. 그래야만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고 그 실패를 개선의 출발점으로 바꿀 수 있다.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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