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빵플레이션'의 뻔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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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빵플레이션'의 뻔한 결말

지난 8월 30일 서울 성수동의 한 팝업스토어. 문을 열기도 전부터 인근 골목이 북적였다. 인기 유튜버가 연 이 팝업스토어의 킬러 콘텐츠는 990원짜리 소금빵. 프랜차이즈 빵집 소금빵(약 3000원)의 3분의 1 수준 가격이 화제가 됐다. 이른바 ‘빵플레이션’ 논란에 불을 붙였다. 고물가 속 빵플레이션 논란은 일부 소비자의 불만을 넘어 정부 규제 이슈로까지 번지며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990원 소금빵 스캔들

민심을 자극하는 ‘빵값 보고서’도 잇달아 나왔다. 한국신용데이터는 최근 베이글 가격이 3년 새 44% 뛰었고, 소금빵도 30% 올랐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작년 말 외부 기관에 의뢰해 내놓은 빵값 보고서는 2023년 기준 한국의 빵 소비자물가지수가 129로 미국(125), 일본(120), 프랑스(118)보다 높았다고 지적했다. 100g당 평균 식빵 가격은 703원으로 프랑스(609원), 미국(588원), 호주(566원)를 추월했다고 썼다.

한국 빵값은 왜 이토록 비싼 것일까. 원인은 복합적이다. 먼저 빵은 한국의 주식(主食)이 아니므로 충분한 수요 창출에 한계가 있다. 소규모 빵집도 많아 ‘규모의 경제’ 실현이 어렵다. 높은 인건비와 원재료의 수입 의존도, 복잡한 유통 과정도 원가를 밀어 올리는 요인이다. 밀·버터·설탕 등은 글로벌 시세와 환율에 따라 춤춘다. 낙농 국가에 비해 영세한 농가 규모 탓에 국내 달걀과 원유 가격은 구조적으로 높다. 달걀 가격은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 때마다 치솟는다. 원유 가격은 저출생으로 수요가 급감했는데도 낙농가를 보호하느라 수년째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복잡한 문제에 대한 정부의 해법은 단순했다. 왜곡된 시장 구조 등은 방치한 채 ‘손쉬운 표적’인 기업 때리기로 여론의 방향을 돌렸다. 공정위는 이달 안에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등의 설탕 담합 혐의와 관련해 제재 절차에 착수하기로 했다. 설탕과 함께 빵값 상승의 주범으로 꼽히는 밀가루 담합 혐의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거들었다. “고삐를 놔주면 담합하고 독점하고 횡포를 부리고 폭리를 취한다”며 원색적인 기업 비판에 나섰다. ‘가격 조정 명령’과 ‘기업 분할’까지 언급했다. 공정위 빵값 보고서로 예고된 정부 대책이 결국 낡고 오래된 익숙한 프레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또 '기업 때리기'

아이러니한 것은 소비자 인식 조사 결과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들이 빵을 구매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요인은 가격이 아니었다. 맛과 품질을 고려한다는 응답자가 전체 응답자의 67.3%로 가격(3.5%)을 압도했다. ‘빵 성지 순례’ ‘런던베이글뮤지엄 오픈런’ 등의 트렌드는 빵이 생필품이라기보다 심리적 만족을 위해 소비하는 기호품임을 보여준다.

빵값이 오르는 이유는 기업의 탐욕이 아니다. 기업을 희생양 삼아 대중의 분노를 달래는 포퓰리즘식 해법으로는 빵값도, 물가도 잡기 어렵다. 가격 통제는 오히려 시장을 왜곡할 뿐이다.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소비자가 떠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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