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코 매끄럽게 뚫는 ‘코나무’ 뿌리껍질 유근피[이상곤의 실록한의학]〈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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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얼굴은 얼이 깃든 굴이다’라는 말이 있다. 얼굴에는 코를 둘러싸고 ‘부비동’이라는 굴 모양의 공간이 네 쌍이나 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부비동은 콧속으로 열린 작은 공간을 통해 뇌의 열을 식혀주는 기능을 맡는다. 자동차로 따지면 라디에이터 같은 곳이다.

부비동에 염증이 생기면 코와 연결된 공간이 막혀 공기가 들어가지 못하고, 인체의 ‘공냉식 시스템’이 정지한다. 그러면 머리가 터질 듯 아프고 눈이 빠질 듯한 고통이 있거나, 뺨이 아프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은 열려 있어야 할 곳이 닫혀 생긴 현상이다.

그래서 부비동염의 치료는 염증을 가라앉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기·배설’이 가장 중요하다. 부비동과 코를 연결하는 좁은 공간을 다시 열어주면, 안에 가득 찬 농이나 염증 물질이 밖으로 배출되고 좋은 공기가 다시 공급됨으로써 부비동염이 치료된다. 환기·배설을 어떻게 하느냐만 다를 뿐, 한의학이나 현대의학 모두 치료 원리는 같다.

한의학은 부비동염의 치료에 느릅나무 뿌리 껍질인 유근피(楡根皮)를 쓴다. 나무는 대부분 껍질에서 수액을 빨아올리기 때문에 껍질을 벗겨내면 바로 말라 죽는다. 하지만 느릅나무는 껍질을 제거해도 죽지 않고, 몸통 전체로 진액을 빨아들인다. 실제 고서에는 유근피를 두고 “구멍을 매끄럽게 하여 뚫는 작용이 강하다”라는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유근피가 부비동염의 치료에 쓰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본초강목’에는 “느릅나무의 한자를 ‘유(楡)’라고 쓴 것은 그 즙이 부드러워 ‘유(柔)’라고 했다”는 설명이 있다. 실제로 유근피를 끓이면 끈적이는 콧물 같은 점액이 나온다. 느릅나무를 ‘코나무’라고도 부르는데, 코 질환 치료에 도움이 돼 그렇게 불렸다는 설이 있다.

한의학에서는 유근피가 코의 점액 분비 작용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코는 하루에 약 1.2L의 점액으로 코를 촉촉하게 적시고, 이물질을 감싸서 배출한다. 그러나 비염으로 점액 분비 능력이 떨어지면 코가 답답해지고 잘 풀리지 않으며, 킁킁거리고 붙어 있는 느낌이 든다. 점액 분비 능력이 큰 유근피는 코를 매끄럽게 해 염증의 나쁜 열기를 씻어낸다.

느릅나무는 봄에 꼬투리가 먼저 나와 열매를 맺고, 꼬투리가 떨어져야 비로소 잎사귀가 나온다. 열매를 맺을 기운을 생성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그 기운을 거둬들이는 셈이다. 한의학은 이를 느릅나무가 생성의 기운을 오랫동안 몸속에 축적하고 연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유근피가 잠을 잘 오게 하는 이유도 이런 속성 때문이다. 인간이 잠을 자는 것은 몸을 쉬게 해 생기를 수렴하고, 깨어 활동할 때의 생기를 기르기 위함이다. 영화 ‘애수’의 무대, 영국 런던의 워털루 다리는 느릅나무로 만들었다. 물속에서도 썩지 않는 생기 연장의 힘을 이용한 것이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유근피는 임금의 종기 치료에 주로 사용됐다. 인조와 현종은 유근피로 고약을 만들어 붙여 종기를 삭였다. 종기는 붉은 혈맥이 열을 만나 붓고 아프며 피고름이 되는 것으로, 초목이 시들어 병드는 것과 같다. 병소에서 생기는 병적인 기운을 생기로 변화시킨다는 점은 유근피의 본래 효험과 일치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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