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후된 車도시를 스타트업 허브로… 위기의 땅에서 기회 읽은 사업가[이준만의 세상을 바꾼 기업가들]

1 day ago 1

美 산업도시 다시 일으킨 댄 길버트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디트로이트는 한때 미국 경제의 상징이자 자존심이었다. 1950년대에는 미국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였고 포드, 제너럴모터스(GM), 크라이슬러로 대표되는 ‘빅3’ 자동차 회사들의 본거지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미 자동차 산업이 일본, 유럽, 한국 주도의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디트로이트는 급격히 쇠퇴했다. 2013년에는 미 지방정부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을 선언했다. 도심은 유령도시처럼 변해갔고, 빈 건물과 범죄율 급등이 악순환처럼 번져 도시를 떠나는 기업과 시민들의 움직임을 가속화시켰다.》

낙후한 교외 출신, 도시에 꿈 품다

길버트는 1962년 디트로이트 외곽 사우스필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바(bar)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아버지를 둔 평범한 유대계 가정에서 성장했다. 길버트는 미시간주립대에서 학부를 마친 뒤 웨인주립대 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그의 진짜 관심은 창업이었다. 20대 초반부터 지역 부동산 중개와 금융 관련 사업을 직접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디트로이트라는 도시가 안고 있는 위기와 가능성에 눈을 떴다.

1985년, 23세의 나이에 길버트는 주택담보대출 전문회사인 ‘록파이낸셜’을 창업했다. 당시 모기지 시장은 절차가 복잡하고 느리며, 은행 중심의 보수적 산업 구조에 묶여 있었다. 길버트는 이를 뒤엎고 기술 중심의 간편한 금융 서비스, 24시간 고객 응대, 온라인 대출 프로세스를 도입하며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그의 파격적인 전략은 빠르게 성과를 냈고, 록파이낸셜은 단기간에 미시간 최대의 대출 회사로 성장했다.

그는 1999년 회사를 미 소프트웨어 기업 ‘인투이트’에 매각하며 첫 번째 성공적 엑시트를 이뤘다. 그러나 인수합병(M&A) 이후 경영 방식에 대한 불만으로 2002년 회사를 다시 인수한 뒤 이름을 퀴큰론으로 바꾸고 디지털화된 금융 플랫폼으로 재출범시켰다. 이후 이 회사는 미 전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온라인 모기지 시장의 선도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2020년에는 ‘로켓’을 모기업으로 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도시 재생의 전환점 된 본사 이전

길버트는 2010년 퀴큰론 본사를 파산 직전의 디트로이트 도심으로 과감히 이전했다. 이는 도시와 기업의 공동 재건을 위한 전략적 전환이었다. 대부분의 기업이 디트로이트를 떠나던 시기, 그는 오히려 수천 명의 직원을 이끌고 도심으로 들어왔다. 또 직원들에게 도심 거주 시 주택 구매 보조금을 지급하는 ‘리브 다운타운(Live Downtown)’ 프로그램을 시행했다.동시에 부동산 개발사 ‘베드록 디트로이트’를 설립해 도심의 낙후한 건물을 인수하고 리노베이션했다. 건물을 카페, 예술공간, 스타트업 사무실 등으로 채우자 도심 전체에 젊고 창의적인 에너지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의 주도하에 이뤄진 누적 민간투자는 75억 달러(약 10조4362억 원) 이상으로, 이는 도시 전체를 기업 생태계로 재설계한 전략적 투자였다.

길버트는 도시를 단순히 투자처가 아닌 하나의 운영 가능한 조직체로 접근했다. ‘Q라인’이라는 전기트램을 구축해 교통을 재설계하고, 도심의 공공 공간에 무선 인터넷과 스마트 인프라를 도입했으며, 창업 인센티브와 문화공간 지원 정책을 함께 추진했다. 이는 디트로이트가 ‘살 수 있는 도시’를 넘어 ‘살고 싶은 도시’로 변모하는 계기가 됐다.

2022년 디트로이트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 순증세를 기록했고, 한때 40%에 이르던 도심 공실률은 빠르게 낮아졌다. 도심 지역 실업률은 4∼5% 수준까지 회복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에 대해 “공공의 실패를 민간이 메운 실험적 기업가”라 평가했다.

도시도 기업도 함께 성장한 모델

길버트의 이러한 시도는 단지 도시를 살린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기업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퀴큰론은 2020년 지주회사 체제 전환과 함께 뉴욕증시 상장에 성공했으며, 로켓 모기지는 미국 최대의 온라인 모기지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개인 자산은 약 20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된다.

길버트는 흔히 억만장자 부동산 투자자 또는 핀테크 사업가로 분류되지만, 본질적으로 그는 ‘위기의 땅에서 기회를 읽은 기업가’다. 디트로이트는 그에게 비단 사업 거점이 아니라, 개인 자산을 사회적 자본으로 전환하는 실험 무대였다. 그의 리더십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더욱 주목을 받았다. 도시의 회복 탄력성과 자생적 생태계 구축이 중요해진 시대에, 그의 실험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역의 기업가가 도시의 미래를 바꾼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여줬다.

한국의 많은 도시 역시 공동화에 직면해 있다. 지방 중소도시와 산업도시는 젊은 인구 유출, 대학과 공장 폐쇄로 도심이 텅 비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 재생은 단순히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벽화 몇 점을 그리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도시의 경제적 동력을 되살릴 수 있는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 구축이 절실하다.

선제적 투자 기업, 도시 미래 선점

길버트가 보여준 것처럼, 기업은 도시를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설계하고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를 위해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역량 강화가 전제돼야 한다. 중앙정부 주도의 일률적인 도시정책이나 일회성 공공개발로는 지역의 고유한 경쟁력을 끌어내기 어렵다. 규제 완화, 세제 감면, 주택·교육·문화 인프라 확충 등 맞춤형 전략을 지방이 스스로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이를 뒷받침할 정책적 인센티브도 마련돼야 한다.

한국에 길버트와 같은 기업가가 등장하려면, 도시 자체가 그를 불러들일 수 있는 여건과 유인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미국에선 오라클, HP, 테슬라 등 수많은 기업이 캘리포니아를 떠나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가 가능한 텍사스로 본사를 옮기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모여 있던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들도 주도(州都) 오스틴으로 이동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텍사스 주정부는 각 도시와 협력해 부동산 세금 감면, 인프라 지원, 규제 유예 등 맞춤형 기업 유치 전략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고, 이는 거대한 이동 흐름을 만들어 냈다.

이는 지방정부가 독자적 비전과 실행력을 갖출 때, 기업이 수도권 외 지역에도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앙정부 주도의 균형발전 담론을 넘어서, 지방정부에 제도적 자율성과 재정적 유연성을 보장해야 한다.

물론 지방정부의 제도적 유인만으로 도시가 살아나진 않는다. 결국 변화는 기업가의 선도적인 결단과 책임 있는 투자에서 나온다. 낙후된 지역에 먼저 뛰어드는 게 당장은 리스크일 수 있다. 기반시설이 부족하고, 인재가 모이지 않으며, 수익 모델도 불확실하다. 하지만 길버트가 보여준 것처럼, 도시의 부가가치가 가장 낮을 때 과감히 투자한 기업은 도시가 회복될 때 가장 큰 보상을 받는다.

기업은 도시를 돕는 존재가 아니라, 도시와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다. 한국 기업들도 단기 수익에만 집착하기보다, 장기적인 도시 전략 속에서 새로운 시장과 브랜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선제적으로 투자한 기업이 도시의 미래를 선점하게 될 것이다.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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