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많이 오면 경제에 좋다?… ‘비 오는 날’ 늘면 선진국은 성장 둔화[박재혁의 데이터로 보는 세상]

1 day ago 3

폭우-폭염의 불평등한 청구서
기후위기, 물가-노동생산성에 영향
비오는 날-극한 폭우 늘면 성장률↓
제조-서비스업 선진국은 더 민감해
폭염 보상구조 개발도상국에 불리해
폭염 노출시간 70%-무역수익 6.7%
극단 기후로 부자-빈곤국 각각 부담

《최근 한 달간 쉴 새 없이 번갈아 닥친 폭우와 폭염으로 여름을 좋아하던 사람들조차 버티기 힘든 시간을 맞고 있다. 장마철 막바지에 전국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산사태와 하천 범람으로 인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속출했다. 이어진 가마솥 더위는 어떠한가. 서울과 강원 강릉에선 밤에도 기온이 30도 안팎을 보이는 초열대야까지 나타나고 있다. 수십년간 과학자들이 경고해온 기후위기를 매일의날씨로 체감하는 상황이 됐다.》

박재혁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박재혁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극단적 기후 현상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국가 경제 전반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폭염은 야외 근로자의 업무 효율을 떨어뜨려 국가 단위의 노동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고, 폭우와 가뭄은 농축수산물 생산량을 줄여 식료품 가격의 상승을 부추긴다. 실제로 이번 폭우로 축구장 4만여 개 면적의 농경지가 침수되고 180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폐사해 여름철 농축산물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폭우와 폭염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불평등한 영향을 분석한 최신 연구를 소개한다.

첫 번째 연구(연구①)는 강수량 변화가 경제생산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했다. 기존 거시경제 연구들은 주로 연간 총강수량만을 변수로 사용해, 강수량이 경제성장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지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를 극복하고자 77개국 1554개 하위 지역의 40년간 경제생산 데이터와 고해상도 기후 데이터를 결합했다. ‘비 오는 날의 수’(일일 강수량 1mm 이상)와 ‘극한 폭우의 강도’(연간 상위 0.1% 극한 강수일의 총강수량) 등 강수 분포 특성을 세밀하게 들여다본 것이다.

분석 결과 기존 연구처럼 연간 총강수량이 많을수록 경제 성장에 긍정적이지만 그 효과는 점차 감소했다. 더 중요한 발견은 따로 있었다. 우선 강수량이 많지 않더라도 ‘비 오는 날’이 늘어나면 경제성장이 저해된다는 사실이다. ‘비 오는 날’이 과거 평균보다 1표준편차만큼 증가하면 해당 지역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평균 1.35%포인트 감소했다. 또 단기간에 많은 비가 쏟아지는 ‘극한 폭우’ 역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극한 폭우’가 1표준편차 증가하면 경제성장률은 평균 0.36%포인트 둔화됐다.

이러한 영향은 국가의 경제 수준과 산업구조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부유한 국가는 가난한 국가에 비해 ‘비 오는 날’ 증가에 47% 더 민감하게 반응했고, 극한 폭우로 인한 성장 둔화 효과도 훨씬 뚜렷했다. 반면 가난한 국가는 연간 총강수량 증가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더 컸다. 부유한 국가의 경제는 제조업과 서비스업 중심이라 잦은 강수와 폭우로 인한 생산 차질에 더 취약하다. 반면 농업 중심의 저소득 국가는 강수량 증가가 가뭄 해소 등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비가 많이 오면 좋다’는 단순한 통념을 넘어, 강수 패턴 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복잡하고 비대칭적인 영향을 정량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두 번째 연구(연구②)는 국제무역이 일터에서의 폭염 노출 위험을 어떻게 불평등하게 분배하는지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기후 모델과 국가 간 산업연관모형(MRIO), 노동 관련 데이터 등을 통해 특정 국가의 소비 수요가 다른 국가의 생산활동과 노동자의 폭염 노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추적했다. 연구 결과 1995∼2020년 무역과 관련된 전 세계 노동자들의 폭염 노출 시간이 2215억 시간에서 4190억 시간으로 89% 급증했다. 이 부담은 극도로 불공정하게 분배되고 있었다. 2020년 기준 저소득 및 중하위 소득 국가는 전 세계 노동시간 기준 폭염 노출의 각각 18.3%와 53.7%를 감당했지만, 받은 보상은 각각 1.0%와 5.7%에 불과했다. 선진국 소비자들이 사용할 제품을 위해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이 폭염 속에서 건강을 위협받으며 일하지만, 정당한 보상은 거의 받지 못했다는 의미다. 결국 선진국은 국제무역을 통해 자국 소비가 초래하는 건강과 환경비용을 개발도상국에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기후위기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모두에 각각 다른 방식으로 막대한 경제적 비용을 안긴다. 물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을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하며 재생에너지 중심 사회로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기후위기 대응은 종종 시급한 현안에 밀리기 십상이다. 기록적인 폭우와 폭염이 남긴 유일한 긍정적 효과가 있다면, 기후위기 대응이 한국의 중장기적 미래를 좌우할 변수가 됐음을 모두가 절감하게 됐다는 점이다.

연구① Kotz, Maximilian, Anders Levermann, and Leonie Wenz. “The effect of rainfall changes on economic production.” Nature 601.7892 (2022): 223-227.

연구② Li, Meng, et al. “Inequitable distribution of risks associated with occupational heat exposure driven by trade.” Nature Communications 16.1 (2025): 537.


박재혁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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