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조은아]파리 도심에 포장마차형 ‘소주 바’… ‘메이드 인 프랑스’ 소주도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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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나라’에서 존재감 키우는 소주
와인 소비 주는데 소주는 급증… “육개장 등 국물엔 소주가 제격”
20대 청년들, 프랑스산 소주 생산… 쌀 원료로 쓰며 코냑 향 담아
“소주 영문명부터 표준화해야”… 전통주 원산지 표기 관리 등 필요

5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6구 오데옹역 근처에 있는 한국식 ‘소주 바’에서 현지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성인들이 모여 앉은 테이블엔 소주병들이 놓여 있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5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6구 오데옹역 근처에 있는 한국식 ‘소주 바’에서 현지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성인들이 모여 앉은 테이블엔 소주병들이 놓여 있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조은아 파리 특파원

조은아 파리 특파원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6구 오데옹역 근처 카페 거리. 프랑스식 카페와 식당 사이로 ‘소주 바(SOJU BAR)’란 붉은 네온사인이 걸린 식당이 나타났다. 한국 먹자골목에서 흔히 보이는 네온사인, 다닥다닥 붙은 작은 식탁들, 어둑한 조명이 포장마차를 재현한 분위기였다. 한국 수저 세트와 그 아래 깔린 흰 냅킨, 한국 술 광고를 붙인 플라스틱 물병 등 포장마차 소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젊은 남성들이 모여 앉은 테이블, 중년 남성이 혼술을 하고 있는 자리에는 눈에 익숙한 초록 소주병들이 놓여 있었다. 비좁은 가게에 앉은 네다섯 팀의 일행 가운데 동양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한국 여행 중 소주를 종종 마셨다는 프랑스인 크리스티안 말라바포티 씨는 “소주는 육개장, 해장국 같은 국물과 아주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최근 전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한식과 궁합이 맞는 술로 소주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셈이다.

K드라마, K팝 인기로 한식 열풍이 불더니 이제 한식과 함께 놓이는 소주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선 포장마차형 소주 바는 물론이고, 프랑스인 청년들이 창업해 생산하는 ‘프랑스산 소주’까지 등장했다.

● 佛 소주 수출 5년 만에 8.4배로 급증

프랑스에서 소주 열풍은 심상치 않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파리지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프랑스로 수출된 소주의 규모는 2019년 11만6047달러(약 1억5900만 원)였지만 지난해엔 97만5428달러(약 13억3400만 원)였다. 수출 규모 자체는 아직 미미한 편이지만 5년 만에 8.4배로 증가한 것이다.

특히 프랑스인들의 국민 주류인 와인 소비는 줄고 있는 중이라 소주 판매 증가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프랑스 매체 ‘프랑스 앵포’에 따르면 프랑스의 와인 소비량은 1960년대에 1인당 연간 평균 120L였지만 최근엔 약 40L로 줄었다. 약 60년 새 70%가량 줄어든 셈이다.

소주가 인기를 끄는 핵심 비결로는 한식의 성장이 꼽힌다. K드라마, K팝을 접하며 한식에 눈을 뜬 프랑스인들이 이제 한식과 함께 놓이는 소주에 관심을 갖게 된 것. 프랑스인 레아 바사르 씨는 “소맥과 소주를 마셔 봤는데 모두 한국 음식과 딱 맞는 술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한국 음악, 영화, 드라마의 확장과 미식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소주는 프랑스에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마실 때 부드럽게 넘어가는 점도 소주의 매력으로 꼽힌다. 와인보다 가벼운 느낌을 주고, 샴페인이나 맥주에 비해 탄산이 덜해 잘 넘어간다는 얘기다. 프랑스인 파트나 라파엘 마리 씨는 “프랑스 와인 등과 비교했을 때 소주는 마실 때 느낌이 아주 좋고 부드럽다”고 말했다.

소주가 여러 가지 과일 향과 자연스럽게 섞인다는 점도 강점이다. 실제 복숭아, 청포도 맛의 소주가 식당 진열대를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지난달 29일 파리 11구의 한 한식당에서 열린 전통주 시음회에선 과일 맛과 소주를 섞은 칵테일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주류를 유럽에 수입하는 티엔글로벌의 김태은 대표는 “소주 등 전통주는 아직 유럽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과일향을 섞어 현지인들에게 쉽고 친숙하게 다가가는 게 좋은 전략”이라고 말했다.

● 프랑스인이 만든 ‘프랑스산 소주’도 출시

20대 프랑스인 2명이 프랑스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프랑스식 소주’.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20대 프랑스인 2명이 프랑스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프랑스식 소주’.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프랑스에서 소주가 더 잘 팔릴 것을 예감한 사업가들은 아예 프랑스에서 직접 소주를 생산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스와티 에크 씨(23)와 마르탱 프라타롤리 씨(25)는 최근 최초의 프랑스산 소주 ‘야주(YAJU)’ 브랜드를 선보였다. 브랜드명은 한국어 ‘자유(JAYU)’의 알파벳 순서를 바꿔 프랑스인들이 발음하기 쉽게 만들었다.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소주를 개발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프라타롤리 씨는 기자와 만나 “프랑스 친구들이 한국을 다녀오거나 파리의 한식당을 가서 소주를 맛본 뒤 자주 얘길 해서 소주를 맛보게 됐다”며 “색다른 매력에 매료돼 프랑스에서도 개발해 팔면 반응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소주의 매력은 다양한 맛을 연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로 마시면 일본 사케보다 달지 않은 편인데, 달게 마시고 싶으면 각종 과일향과 섞어 세련된 칵테일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게 이들이 꼽은 소주의 매력이다.

이들이 내놓은 첫 프랑스산 소주는 프리미엄 소주다. 한 병에 33유로(약 5만3000원)로 가격이 비싼 편이다. 우선 소주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100% 쌀을 재료로 썼다. 프랑스의 고급 식당 테이블에 오르는 현지 카마르그의 쌀을 써서 고급 이미지도 강조했다. 프랑스 남부 아를 남쪽에 있는 카마르그는 프랑스에서 보기 드문 쌀 생산지다.

이들은 프랑스의 대표 술인 코냑 제조에 사용하는 ‘샤랑트식 증류기’를 사용해 코냑의 향도 녹였다. 실제 기자가 맛본 프랑스 소주에선 소주의 향과 함께 깊은 코냑의 맛이 느껴졌다.

알코올 도수는 한국 소주와 비슷한 17도로 만들었지만 병 용량은 한국 소주의 약 2배인 700mL로 개발했다. 이는 프랑스 주류의 표준 크기다. 현지 소비자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전략이다.

이들이 소주 제조를 익힌 방법도 흥미롭다. 한국에 전혀 가지 않은 채 유튜브로 기본 제조법을 배우고, 전통주에 대한 여러 연구 논문을 참고했다. 다만 누룩은 만들기 힘들다고 판단해 누룩 대신 프랑스의 자연 효모를 활용했다.

● “영어식 명칭부터 재정비해야”

소주는 파리의 한인 마트뿐 아니라 앵테르마르셰, 까르푸 등 프랑스 일반 대형마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급 주류를 많이 취급하는 프랜차이즈 주류 판매점 ‘니콜라’에도 소주 ‘화요’가 납품된다.

소주 시장이 급성장하다 보니 한국 주류 회사들도 팝업 매장을 여는 등 시장 확대를 위한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초 파리에서 ‘진로 정원’이란 팝업 매장을 마련했다. 술 시음은 물론이고 한국 전통 부채에 방문객이 선택한 문구를 손 글씨로 새겨주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프랑스 소주 수출량은 연평균 70% 이상씩 늘고 있다.

다만 한국 소주가 와인처럼 세계적으로 성장하려면 ‘소주’, ‘술’의 영어식 표기를 정비하고 개념을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프랑스 곳곳에서 열리는 주류 행사에선 영어식 이름이 제각각이었다. 소비자로선 진짜 소주인지 짝퉁인지 헷갈릴 법했다.

독일에서 한국 전통주 수입업체 ‘소주할래’를 운영하는 허영삼 대표는 “유럽연합(EU)이 관리하는 제품명 목록에 ‘소주’를 등록하면 유럽 여러 국가의 납품처나 소비자들에게 더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소주의 프리미엄화를 위해 프랑스의 AOC처럼 원산지 품질을 보증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유럽인들도 소주가 건강하고 좋은 원료로 만든 술임을 알고 안심하고 마실 수 있게 정부 차원의 원산지 표기 관리 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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