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축구, 동아시안컵 우승…MVP 장슬기 "경험 삼아 더 좋은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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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안홍석]
(수원=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계속 버텨온 저 자신에게 굉장히 고생했다고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여자 축구 대표팀에서 생애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에이스' 지소연(34·시애틀 레인)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 무대에서도 톱 클래스로 인정받는 공격형 미드필더 지소연은 잉글랜드 첼시, 일본 아이낙 고베 등에 몸담으며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대표팀에서는 2006년부터 20년 가까이 A매치 169경기를 뛰면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남자축구와 달리 여자축구에서는 일본, 중국, 북한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세계 무대에서도 강세를 보여왔다.
여자 아시안컵, 아시안게임 등 아시아 국제대회에서 한국이 좀처럼 우승하지 못한 이유다.
그렇게 쌓여만 가던 우승의 한을 지소연은 1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풀었다.
한국은 대만을 2-0으로 꺾고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우승을 이뤄냈다.
경기 뒤 취재진과 만난 지소연은 "이 순간을 굉장히 기다려왔다. 대표팀 생활 20년째에 진짜 (우승컵을) 들어 올렸는데,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오늘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기다려온 우승이라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지소연은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지소연의 냉정한 면모는 후반전 페널티킥 선제 결승 골을 넣었을 때도 드러났다. 동료들이 축하하러 달려왔지만, 지소연은 전혀 웃지 않았다. 외려 화를 내는 듯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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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1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여자부 대한민국 대 대만 경기. 한국 지소연이 페널티킥을 성공한 후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25.7.16 xanadu@yna.co.kr
대회 최약체 대만을 상대로 이기기만 하면 우승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전반전 파상공세를 펼치고도 상대 골문을 열지 못했다.
지소연은 "비기는 줄 알았다. 그래서 너무 답답했다. 선수들이 너무 급했던 것 같다. 골 넣으면 우승이라는, 완벽한 시나리오로 앞 경기가 끝났기에 선수들이 되게 좋아했다. 그 들뜬 분위기가 전반에 계속 이어졌다"고 돌아봤다.
이어 "하프타임에 (라커룸에서) 소리를 질렀다. 이대로 가면 우승 못 한다고, 정신 차리라고 했다. 저를 처음 겪는 어린 선수들이 굉장히 놀랐다"고 전했다.
페널티킥을 차는 순간이 매우 떨렸다는 지소연은 "원래 안 차고 싶었다. 근데 자신 있는 사람 나와 보라니까 아무도 대답을 안 하더라"라고 말했다.
보통 축구 대회의 우승 세리머니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건 주장이다. 그러나 대표팀 주장 이금민(버밍엄시티)이 아닌 지소연과 김혜리(우한) 두 베테랑이 세리머니의 중심에 섰다.
후반 교체돼 벤치로 들어간 지소연은 후배들에게 '트로피는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엄포를 놨다고 한다.
그는 "당연히 '언니'들이 트로피 들고 오는 걸로 얘기가 끝났다. 누구나 트로피에 손댈 수 없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어 "우승 세리머니를 할 때 눈물이 좀 나야 정상인데, 눈물이 안 났다. 소속팀에서는 항상 우승을 많이 했는데, 대표팀에서는 우리 선수들이랑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어서 정말 감격스러웠다. 앞으로 자주 이런 모습들을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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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1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여자부 대한민국 대 대만 경기 종료 후 열린 시상식에서 대회 MVP로 선정된 한국 장슬기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5.7.16 xanadu@yna.co.kr
다른 선수들 역시 A대표팀에서 처음 우승을 경험한 건 마찬가지다.
연령별 대표팀에서 2009 아시아축구연맹(AFC) U-16 여자 챔피언십, 2010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 월드컵, 2013 AFC U-19 여자 챔피언십 우승을 경험한 장슬기(31·한국수력원자력)도 A대표팀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우승해봤다.
2골로 대회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은 그는 "우승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우리 선수들이 세리머니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더라. 이게 마음이 아프면서도, 이걸 경험 삼아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을 내도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ahs@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7월16일 23시33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