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이달 16일(현지 시간)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1’으로 한 계단 떨어뜨렸을 때는 14년 전과 같은 급작스러운 충격과 공포는 없었다. 이미 2번의 신용등급 강등을 겪은 데다 예고됐던 이벤트라는 점에서 후폭풍 없이 무난히 지나가는 듯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신용등급 강등과 관련해 18일 “누가 신경이나 쓰겠나. 카타르는 신경 쓰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도 마찬가지”라며 “그들은 (미국에) 돈을 밀어넣고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그때까진 좋았다. 단 며칠의 시차가 있었을 뿐, 국채 시장은 무디스발 ‘부채 공포’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신용등급 강등 이후 미국 국채 수요가 흔들리는 것 같더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추진하는 대규모 감세안에 대한 불안까지 겹치자 국채 시장은 인내심을 잃고 ‘발작’을 일으켰다. 21일 미 재무부가 입찰한 20년 만기 국채 금리가 5%를 넘었다. 10년물 국채 금리도 4.6%대로 급등(국채 가격은 급락)했다. 천문학적 부채에 짓눌린 미 경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자 채권 투자자들은 미 국채를 내던졌다. 일본, 영국, 독일 등에서도 재정적자가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며 국채 금리가 동시다발적으로 급등했다.
유동성이 넘쳐나는 채권시장에서, 그것도 최고의 안전자산이라 여겨지던 미국 국채와 일본 국채가 동시에 휘청거리는 건 이례적이다. ‘채권자경단(bond vigilantes)’으로 불리는 시장이 각국의 재정 건전성에 ‘옐로카드’를 꺼낸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헤지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투자자 레이 달리오는 “우리는 국채시장에 대해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며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듯 이 상황을 바라볼 때, 누적된 부채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문제는 우리 정부도 부채 공포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나라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104조8000억 원 적자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은 11개 비기축통화국 가운데 4위였다. 당장은 한국의 재정 건전성이 다른 나라보다 양호하더라도 이 추세로 빚이 늘면 국채 금리가 충격을 받는 등 어려운 시기가 올 수 있다.
게다가 시장금리는 대부분 국채 금리와 연동돼 있고, 국채 금리가 오르면 회사채 금리도 오를 수밖에 없다. 결국 금리 급등으로 가계와 기업의 이자 비용이 증가하고 소비와 투자까지 위축되는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번 국채 쇼크는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자 기축통화국인 미국마저도 눈덩이 재정적자 탓에 시장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빚’의 무게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누적된 빚 앞에는 장사가 없다.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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