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지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지인이 과일 가게를 하시는 아버지의 단단한 팔근육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과일 상자를 트럭에서 내리고 매대에 옮기는 일을 평생 하셨다. 그는 노년임에도 젊은이 못지않게 팔근육이 단단하지만 처음부터 지금 같지는 않았다고 한다. 힘을 엉뚱한 곳에 주는 바람에 손목이 시큰거려 고생한 적도 많았다. 다치지 않고 무거운 상자를 옮기는 요령을 몸으로 익히는 과정이 수천 번 쌓인 끝에 지금의 노동근이 남았다. 최근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의 한 전공과목에서 전체 수강생 중 절반이 과제 수행에 생성형 AI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학점 불이익을 받았다고 한다. 담당 교수는 학기 초부터 독창적 문제 해결력과 비판적 사고력 함양을 이유로 AI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강생 절반이 적발된 것은 과제를 AI에게 맡기는 것이 몇몇 학생의 일탈이 아니라 이미 관행이 됐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너도나도 AI를 사용하는 시대인데 굳이 과제 수행에 AI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은 왜일까. 그 질문의 답은 아버지의 노동근이 만들어진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무거운 상자를 옮기려는 시도와 시행착오, 또 다른 시도와 성공이 수없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근육은 저절로 단련됐다. 배움 역시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는 과정을 통해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AI는 그 과정을 건너뛰게 만든다. 사용자 대신 생각해 결과를 내주고 자료를 분석하고 인사이트를 뽑아 준다. 복잡한 프로그램 코드도 대신 짜 준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사용자는 자신의 사고의 근육을 쓸 기회가 사라진다. 이런 우려를 실증한 연구도 있다. MIT 연구진이 실험 참가자를 AI 사용 그룹과 검색 엔진 사용 그룹, 오직 자신의 두뇌만 사용한 그룹 등 세 개로 나눠 에세이 쓰기를 시키면서 뇌파를 측정했다. AI 사용 그룹의 뇌 활동이 다른 두 그룹에 비해 현저히 낮게 측정됐다. 두뇌만 사용한 집단의 뇌 활동이 가장 활발했고 검색 엔진 사용 집단은 그 중간이었다. 연구진은 인지적 노력을 AI가 대신해 주는 만큼 ‘인지적 부채(cognitive debt)’가 쌓인다고 말한다. 우리가 AI에게 생각을 대신 하게 만들면 인지 역량 저하라는 빚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에서 코드 작성 과제를 내 준 교수는 학생이 스스로 코드 구조를 짜고 오류 메시지를 해결하기 위해 헤매는 과정에서 실력이 늘기를 바랐을 것이다. AI가 즉시 내어 준 답변으로 ...
[광화문에서/김현지]AI 시대에도 시행착오 없는 배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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