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가장 작은 0.73%포인트 득표율 차로 당선됐다. 유권자들은 진영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한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면서도 새 대통령에게 독선과 오만에 대한 경계를 함께 요구했다. 하지만 당선 직후부터 경고를 무시한 윤 전 대통령은 결국 처절하게 추락했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치러진 6·3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49.42% 득표율, 1728만 표를 얻으며 역대 민주당 대선 후보 중 가장 높은 득표율, 가장 많은 득표로 당선됐다. 불법 비상계엄에 성난 유권자들은 이 대통령에게 큰 힘을 실어주면서도 과반은 허락하지 않았다. 권력의 절제와 자제, 야당과의 포용과 협치를 동시에 주문한 것이다.
승자에게 보내는 유권자의 경고는 이번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서 아주 선명하게 나타났다. 강성 반탄(탄핵 반대)을 내세운 장동혁 대표는 지난달 26일 결선 투표 끝에 탄핵 찬성파를 포용하자는 온건 반탄 김문수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불과 2368표 차, 득표율 0.54%포인트 차 신승이었다.장 대표를 승리로 이끈 건 강성 당원들이었다. 책임당원 투표 80%, 일반국민 여론조사 20%라는 선거룰을 바탕으로 당원 투표에서 52.88% 득표율을 올린 장 대표가 득표율 47.12%에 그친 김 후보를 따돌린 것이다. 반면 여론조사에서 장 대표는 39.82%를 얻어 60.18%의 김 후보에게 20%포인트 이상 차이로 졌다.
국민의힘은 일반국민 여론조사로 표현하지만 이 조사는 역선택을 막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제외하고 보수 지지층과 무당층만을 대상으로 한다. 사실상 보수 지지층 여론조사에 더 가까운 셈이다.
여기에서 드러난 유권자들의 경고는 명확하다. 전당대회에서 보여준 장 대표 발언은 강성 당원들에겐 소구할 수 있어도 당적이 없는 중도 보수층, 더 나아가 당 밖을 벗어난 민심의 바다에선 통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국민의힘의 한 소장파 의원은 “장 대표가 누구보다 결과의 의미를 잘 알 것”이라고 했다. 장 대표는 일단 대표에 취임한 이후 강성 발언은 접어뒀다. 윤 전 대통령 접견에 대해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결정을 하겠다”고 했고, 전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에 대해선 “당 밖에서 최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거리를 뒀다. 주요 당직 인선에서도 계파색이 옅은 합리적인 인사들을 내세웠다.장 대표 주변에선 장 대표가 1도씩 선회하고 있다고들 한다. 당내에선 안도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그 정도의 변화는 당 대표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보낸 경고장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 국민의힘을 향해 정당 해산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민주당에 원내 제1야당으로서 당당하게 대응하고, 나아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내려면 장 대표는 1도씩이 아닌 급변침을 해서라도 민심의 문을 열어야 한다.
김준일 정치부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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