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 꼭 필요한가? 저축은 자신의 삶을 위한 것이지만 자녀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자녀에게 돈을 물려주지 않고 다 쓰고 죽겠다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의 문제로 넘어가면 어떨까? 정부가 미래 세대를 고려하지 않고 모든 자원을 지금 다 탕진하려 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저축은 상식적인 정의감과 충돌하는 문제도 낳는다. 누군가 막대한 부를 후손에게 물려준다고 할 때, 삶의 출발선이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이 따른다. 부모 세대가 자녀를 위해 저축이라는 경제적 부담을 강요받는다면 그것은 또 어떨까. 첫 번째 세대는 희생만 하고 마지막 세대는 건물주가 되는 세대 간 불공정의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저축을 통해 모든 세대가 이익을 보려면 앞선 세대가 적정한 몫을 물려주고, 다음 세대 역시 일정 부분을 다시 다음 세대에 넘겨준다는 원칙에 합의해야 한다. 정의로운 저축 원칙에 합의하려면 미래 세대가 가족과 같은 관심의 대상이어야 한다. 우리가 후손에게 가족과 같은 애정을 가질 때만 자신이 얼마나 저축해 왔는지, 또 얼마나 저축해야 하는지를 따져 묻게 된다. 저축의 비율은 경제적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형편이 어렵다면 적게 저축하고, 부유한 사람은 저축률을 높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저축의 비율이 선행 세대와 후속 세대의 합의를 통해 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족이라면 자신이 부모와 조부모에게 요구했던 만큼 자식에게 어느 정도를 남겨야 할지 결정하면 된다. 미래 세대를 위한 저축은 후손들이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몫을 고려해 이뤄져야 한다. 이처럼 부모와 자식 세대가 모두 공정하다고 인정하는 수준에서 저축 비율이 조정되면 정의로운 저축 원칙이 성립한다. 이러한 적정한 저축률이 유지된다면 최초의 세대를 제외한 모든 후속 세대는 저축을 통해 혜택을 누리게 된다. 롤스는 이를 두고 “각 세대는 정의로운 저축 원칙이 규정한 대로 실질자본의 공정한 동등치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준다”고 설명한다. 저축은 앞선 세대로부터 받은 것에 대한 보답으로서 후속 세대가 더 정의로운 사회에서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다. 그런 점에서 저축의 원칙은 정의로운 제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의무다. 롤스가 말한 대로 “정의로운 저축의 원칙이란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고 유지하기 위한 부담에 있어 각자의 공정한 몫을 이행하자는 세대들 간의 합의”인 것이다.그러나 저축의 목적은 공리주의가 지향하는 누구나 잘사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미래 세대를 더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 저축을 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정의와 상충할 수 있다. 정의롭고 가치 있는 사회는 고도의 물질적 생활수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또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엄청난 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한계효용을 넘어선 부는 오히려 많은 사람을 방종이나 나태로 이끌 위험도 있다. 자식에게 큰 재산을 물려줬지만 고마움도 모르더라며 그 ‘배은망덕’을 한탄하는 부모도 많다.
국민연금은 현 세대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의 노후자금이다. 더 나아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의 삶의 질도 결정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의 규모에 따라 개인의 인생이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나뉘듯이 국가의 축적된 재원에 따라 미래 세대의 운명이 갈린다. 우리가 미래 세대에 물려줘야 할 것은 돈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제도와 타인에 대한 의무, 그리고 부에 대한 건전한 상식이다. 저축의 원칙은 각 세대의 최소 수혜자 입장을 고려해 그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태생적으로 가장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미래 세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오늘 저축할 의무를 지닌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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