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대, 윤심덕의 '비극적 서사'…'사의 찬미' 100년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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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소프라노 윤심덕이 불러 대히트…김우진과 미스터리한 죽음에 화제대중음악 확산의 결정적 기폭제…"음반 판매 1만3천장, 축음기 보급에도 영향"영화·연극 등 K-컬처 100년史 관통한 IP…"강렬한 음악성에 극적 사건 결합해 생명력" 이미지 확대 '사의 찬미'를 부른 소프라노 윤심덕 '사의 찬미' 가사지 발췌.[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이태수 기자 = 소프라노 윤심덕(1897∼1926)이 부른 대표곡 '사의 찬미'(死의 讚美)가 이달 발매 100주년을 맞았다. '사의 찬미'는 윤심덕의 미스터리한 죽음과 맞물려 1920년대 일제강점기 우리 사회에서 크게 히트했고, 이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의 확산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당대 흔치 않은 여성 유학파 성악가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는 100년이 지나도록 생명력을 잃지 않고 영화, 연극, 문학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하고 재생산됐다. 이는 하나의 지식재산권(IP)이 여러 장르에서 활용되는 'K-컬처'의 원형 모델이 됐다. ◇ 미스터리한 죽음에 유작이 히트곡으로 '사의 찬미'는 1926년 8월 소프라노 윤심덕의 유작으로 발표된 노래다. 윤심덕은 동생 윤성덕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소프라노 발성으로 이 곡을 불렀다. 루마니아 작곡가 이바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에 우리말 가사를 붙였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윤심덕은 원래 3박자였던 곡의 리듬을 4박자로 변형해 한층 애절함과 비감을 자아냈다"고 설명했다. 이미지 확대 윤심덕 '사의 찬미' 음반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의 찬미'가 큰 화제를 모은 것은 윤심덕이 1926년 8월 1일 일본 오사카 일동(日東)축음기주식회사에서 이 곡을 녹음한 뒤 같은 달 4일 귀국하는 배편에서 맞은 의문의 죽음 때문이다.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1897∼1926)은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부관 연락선에서 실종됐고, 사랑 때문에 바다에 몸을 던진 연인의 정사(情死)로 보도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배에서 두 사람이 투신하는 것을 본 목격자가 없어 이 죽음을 둘러싼 진상은 100년이 지나도록 미스터리로 남았다. 윤심덕의 사망 소식을 접한 음반사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음반사 측은 음반에 '결사의 독창'(決死의 獨唱)이란 문구를 삽입하고, 가사지에는 '사의 찬미를 최후로 부르고 창해(蒼海)에 몸을 던진 조선 유일의 소프라노 명가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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