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기업이 인공지능(AI)으로 항체 신약 후보물질을 설계하는데 성공해 논문으로 공개했다. 자연계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물질을 만들어낸 성과로 AI 신약개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갤럭스는 AI 단백질 설계 플랫폼 ‘갤럭스 디자인’을 활용해 6가지 항체 신약 후보물질을 설계해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바이오 아카이브’에 발표했다고 17일 밝혔다.
전통 신약개발은 수많은 후보물질 가운데 약효를 보이는 약물을 실험적으로 찾아내는 과정이다. 일반적인 AI 플랫폼은 이 과정을 가상으로 수행해 개발의 속도를 높이는 식이다. 갤럭스의 AI 플랫폼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약물 후보군을 넘어 원하는 모양의 단백질 신약을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라틴어로 ‘새로운’이라는 의미를 가진 ‘드 노보(de novo)’ 단백질 설계라고 한다.
다수의 AI 항체 후보물질을 한번에 공개한 것은 갤럭스가 처음이다. 지난해 미국 바이오기업 나블라 바이오가 단백질 신약 후보물질을 공개했지만 항체의 10분의 1 크기인 나노바디였다. 지난해 9월 구글 딥마인드가 공개한 단백질 설계 AI 알파프로테오도 아직 항체 설계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다. 항체 등 단백질 약물은 저분자화합물보다 크기가 크고 구조가 복잡해 AI로 구조와 결합력을 예측하기 더 까다롭기 때문이다. 저분자화합물 기반 AI 신약은 이미 임상 단계 물질이 여럿인데 반해 단백질 신약은 개발이 더딘 상황이다.
갤럭스는 총 6종의 표적(PD-L1, HER2, EGFR(S468R), ACVR2A/B, FZD7, ALK7)을 공략하는 항체를 설계한 뒤 실제 결합력을 검증했다. 특히 'ALK7' 표적은 기존에 구조 정보가 밝혀지지 않아 이곳에 결합하는 항체를 찾는 것이 불가능했다. 갤럭스 관계자는 "향후 G단백질 연결 수용체(PCR), 이온 채널 등 구조가 밝혀지지 않은 단백질에 대한 항체 신약을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갤럭스가 설계한 항체들은 상업용 치료제와 동등하거나 더 우수한 결합력 및 안정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미노산 1개의 작은 차이도 구별할 정도로 분자적 특이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신약개발 초기 과정에서 약물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설계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갤럭스는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갤럭스 대표)가 2020년 설립했다. 석 대표는 20년 넘게 물리화학을 기반으로 단백질 구조 예측 분야를 연구한 석학이다. 구글 알파폴드가 과학계 50년 묵은 난제를 해결해 세간에 처음 알려졌던 2020년 국제 단백질 구조 예측 대회(CASP)에서 심사를 맡기도 했다. 갤럭스는 LG화학, 와이바이오로직스 등 국내 신약개발사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공동으로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석 대표는 “플랫폼의 높은 설계 정밀도를 증명했다”며 “신약개발 효율성과 성공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