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경기 파주 서원밸리(파71) 1번홀(파4). ‘월드 클래스’ 임성재(27)가 티잉 구역에 들어서자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그가 드라이버를 들고 자세를 잡을 땐 갤러리들이 하나같이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휴가를 냈다는 김민선 씨(36)는 임성재의 티샷을 본 뒤 “월드 클래스의 명품 샷을 볼 몇 안 되는 기회”라며 기뻐했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우리금융챔피언십(총상금 15억원)이 개막 첫날부터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슈퍼스타 임성재가 자신의 후원사 주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1년 만에 국내 대회에 나서면서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평일임에도 1900명의 갤러리가 대회장을 찾았다. 늘 여자골프의 인기에 위축됐던 KPGA투어가 ‘임성재 효과’에 힘입어 이번 주만큼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보다 더 많은 갤러리를 동원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도 커졌다.
◇‘의리의 사나이’ 임성재
2018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데뷔해 통산 2승을 기록한 임성재는 올 시즌 최고의 경기력을 뽐내고 있다. 지난 14일 막을 내린 시즌 첫 번째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시즌 세 번째 톱5(공동 5위)에 들었고, 최경주를 제치고 한국 선수 역대 최고 상금 기록(24일 기준 3342만1009달러)도 새로 썼다. 그는 지난 21일 끝난 시그니처 대회 RBC헤리티지에서도 공동 11위에 오르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임성재는 RBC헤리티지를 마치자마자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이틀 전인 22일 한국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대회 준비에 들어갔다. 이번 대회가 끝나면 곧바로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로 날아가야 한다. 다음달 1일 자신의 메인 후원사 CJ가 주최하는 더 CJ컵 바이런넬슨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불과 1주일 사이 태평양을 두 번 건너는 일정이다. 비행시간만 30시간인데, 13시간 시차를 오가야 하기에 선수에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임성재에겐 스폰서, 팬들과의 약속이 더 중요했다. 그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제 스폰서 대회를 통해 한국 팬들을 만나는 것은 저에게도 정말 행복한 일”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날 임성재는 피곤한 상태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티잉 구역에 들어서기 전 팬들이 “임성재 파이팅!”을 외치자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티샷 직전에는 동반 플레이를 한 박상현, 김백준과 함께 팬들을 위한 기념촬영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를 현장에서 지켜본 한 관계자는 “팬서비스도 월드클래스”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동일 대회 3연패 새 역사 도전
이 대회에서 2023년과 지난해 연속 우승한 임성재는 올해 동일 대회 3연패의 진기록에 도전한다. KPGA투어에서 동일 대회 3연패는 단 여섯 차례 나왔는데, 1997~1999년 SBS프로골프 최강전에서 박남신이 기록한 것이 마지막이다.
시차 탓인지 임성재는 이날 첫 발걸음이 무거웠다. 2번홀(파3)에선 티샷이 왼쪽 러프 지역으로 향해 첫 보기를 범했고, 이어진 3번홀(파5)에선 세컨드샷이 왼쪽으로 크게 벗어나는 바람에 벌타를 받은 뒤 더블보기를 적어냈다.
물론 번뜩이는 장면도 있었다. 6번홀(파4)에서 약 10.5m 거리의 버디퍼트를 떨어뜨려 갤러리의 환호를 자아냈다. 그러나 이날 샷감을 끌어 올리지 못한 임성재는 전반에만 4타를 잃는 등 기대만큼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첫날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으나 임성재를 향한 기대감은 여전히 크다. 그는 2023년 이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5타 차 역전 우승을 거뒀고, 작년에는 마지막 날 2타 차를 뒤집고 우승을 차지하는 드라마를 썼다.
파주=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