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1시께, 경기 용인 아시아나CC 스타트하우스에 진풍경이 펼쳐졌다. 핑골프 제품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골프백 80개를 실은 카트 20대가 출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골프백부터 드라이버 아이언 웨지 퍼트는 물론 골퍼들의 모자와 옷도 핑 일색이었다. 올해로 20회를 맞은 '핑마니아 오픈' 출전자들이었다.
핑골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핑 마니아 클럽'이 스무번째 생일파티를 성대하게 열었다. 핑골프에 대한 애정과 의리로 뭉친 80명의 회원들은 이날 친선대회 '핑 마니아 오픈'에서 치열하면서도 흥이 가득한 경쟁을 펼쳤다. 골프업계에서 단일 브랜드가 이처럼 탄탄한 동호회를 운영하는 것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이다. 라운드 전 식사부터 라운드 뒤풀이까지, 현장은 내내 핑 제품과 골프에 대한 이야기로 활기가 넘쳤다.
◆핑골프로 이어진 20년 인연
골프는 유독 용품 브랜드에 소속감, 일체감을 느끼는 이용자가 많은 종목이다. 14개의 클럽을 비롯해 의류, 신발, 기어까지 골프는 그 어떤 종목보다 사용하는 장비가 많다. 각 브랜드별 개성도 뚜렷하고, 퍼포먼스에 미치는 영향도 절대적이다. 골프 스코어를 줄이고 라운드를 즐기는데 진심인 '진성골퍼'들의 대부분이 골프 장비와 골프장, 투어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금과 시간을 투자하는 고관여층이기에 골프 브랜드들은 이용자들에게 더 많은 소속감을 주고 브랜드 안으로 묶는 것에 집중한다.
핑 마니아 클럽이 골프업계에서 주목을 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31일 현재 회원 수 약 3만1700명, 국내 골프용품 단일브랜드 동호회 가운데 최대 규모다. 한때 많은 골프용품 브랜드가 동호회를 운영했지만 안팎의 이슈로 현재는 일반적인 골프 동호회로 성격이 바뀐 곳이 많다. 하지만 핑 마니아 클럽은 20년째 핑골프에 대한 애정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작은 핑골프 막내 직원의 '무모한 도전'이었다. 2005년 7월, 핑골프삼양인터내셔널 막내였던 차효미 현 부장(활동명 이안, 카페매니저)은 '핑클럽을 쓰는 골퍼들이 자유롭게 클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온라인 카페를 열었다. 지금이야 핑골프가 드라이버·우드·유틸리티의 최강자로 꼽히지만, 당시에는 클래식 아이언, 퍼터 콜렉터들 정도만 관심을 갖고 있는 브랜드였다. 국내 골퍼 인구가 워낙 적었고, 일본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압도적이었던 탓이다.
카페를 연 뒤 핑 클럽을 사용하는 골퍼들이 조금씩 모여들었고, 온라인에서 제품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차 부장은 "회원 수가 1000명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카페가 활발하게 운영돼 '우리 브랜드를 사랑하는 마니아가 이렇게 많구나'하며 매일 감동받았다"고 돌아봤다.
그 역시 여기서는 핑골프 마케팅 담당자가 아닌, 한 명의 핑 마니아 '이안 매니저'다. 그의 정성과 멤버들의 관심으로 조금씩 커져가던 핑 마니아 클럽은 2011년, 멤버들의 소속감이 한층 더 끈끈해졌다. 핑, 캘러웨이, 던롭스릭슨 동호회간 자선 골프대회가 계기였다. '우승한 동호회 이름으로 불우이웃에 자선기금을 전달한다'는 소박한 상품에도, 회원들은 자존심을 걸고 대회에 나섰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차 부장은 "우리 회원들 대부분이 점잖은 분들인데 선수촌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열심히 대회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라고 돌아봤다.
◆"회원 한분 한분이 브랜드 앰버서더"
핑 마니아 회원들은 그 자체로 핑골프의 가장 큰 자산이다. 차 부장은 "회원 한 분 한 분이 핑골프의 앰버서더"라고 추켜세웠다. 2000년대 초기만 해도 일부 마니아에만 알려져있던 브랜드의 최고 장점 '관용성'을 본사만큼이나 적극적으로 일반 골퍼들에게 알린 주역이 바로 핑 마니아 회원들이기 때문이다.
클럽 원년멤버로 대회에도 20회 모두 '전출'한 남승우씨(활동명 '주미희')가 대표적이다. 그는 "주변에서 골프에 이런저런 고민이 있다고 하면 '이거 한번 써 봐'라며 제 클럽을 빌려준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만이 아니라 일주일, 한달씩 시타해볼 수 있도록 빌려주는 일도 허다하다. 그는 "여기 회원들이 대부분 핑클럽으로 기본 2~3세트는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인들에게 시타 기회를 제공하고, 핑 유저로 적극적으로 영입한다"며 "제가 골프를 잘 치고 싶어 핑을 선택하고 만족했기에 그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핑골프의 공식 마케팅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올해 초 신제품 G440 TV CF 촬영에는 회원 20명이 출연해 풍성한 장면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광고에 출연했던 박기석씨(활동명 골프생각)는 "핑의 신제품을 먼저 경험하고, 핑을 알리는데 기여한다는 자부심에 기쁘게 참가했다"고 말했다. 대회 중계 전 방송된 CF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은 지인들의 연락도 그에게는 즐거운 이벤트라고 한다.
동호회 차원의 자선 기부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매년 겨울 회원들은 모금운동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연탄을 구매하고 직접 배달 봉사까지 한다. 지난 2월에는 경기도 과천의 취약계층에 3000장의 연탄을 전달했다.
◆장수 동호회, 비결은 '배려'
'핑 마니아 오픈'은 핑 마니아 클럽 활동의 '꽃'이다. 2012년 9월 12팀 48명 규모로 열린 1회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3년여를 제외하고 매해 꼬박꼬박 1~2차례 열렸다. 매번 신청 개시 1시간 안에 마감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한 회원은 "운전 중 대회 신청이 시작됐다는 알람을 받고 부랴부랴 차를 세워 참가에 성공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그린피, 카트비, 캐디피 등 골프 라운드 비용을 낸다. 핑골프 측은 회원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식사를 대접하고, 크고 작은 상품을 내놓는다. 이날도 스탠드백, 페어웨이 우드, 웨지 등 골퍼들의 가슴을 뛰게하는 아이템을 비롯해 우산, 항공커버, 보냉백까지 다양하고 푸짐한 경품이 참가자들을 즐겁게 했다.
직장인에게는 쉽지 않은 평일 오후에 열린다는 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많은 참가자들이 "오늘을 위해 월차를 냈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수도권에서 주로 열리지만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회원도 적지 않다. 이번 대회에도 부산, 울산에서 온 회원이 있어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부산에서 왔다는 참가자는 "그간 대회에 꼭 오고 싶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생겨 놓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핑 마니아 클럽이 스무살 청년으로 성장해온 것은 회원과 운영자들의 배려가 곳곳에 녹아든 결과다. 핑 마니아 오픈 곳곳에도 참가자를 위한 다양한 배려가 눈길을 끌었다.
통상 대회가 열리면 성적 순으로 우승자를 결정하지만 핑 마니아 오픈은 스트로크 우승자인 메달리스트, 신페리오 우승자를 함께 뽑는다. 신페리오는 참가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무작위로 12개 홀을 골라 그 홀의 스코어만 합산해 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전체 스트로크수가 100타여도 신페리오 방식의 대상이 된 홀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행운이 따라준다면 우승할 수 있는 셈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메달리스트는 74타를 친 '핑으로만'이, 신페리오는 '드삼'이 차지했다.
특정 회원들이 우승을 독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명예의 전당'도 도입했다. 메달리스트로 3회 이상 우승하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고, 이후 순위 선정에서 제외한다. 현재 명예의 전당에는 동물원달(윤주문), 핑이글스(고영준), 골프생각(박기석). 장타뽕(손대웅), 훼이드맨(최성호) 총 5명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핑 마니아 오픈의 하이라이트는 '가위바위보'다. 대다수의 행사가 럭키드로우, 즉 '뽑기'로 상품을 나누지만 핑 마니아 회원들은 모든 참가자가 참여하는 가위바위보로 상품을 나눠갖는다. '이안을 이겨라', '용환대리를 이겨라' 등의 미션을 걸고, 전 참가자가 가위바위보에 참여해 이긴 사람들로만 점점 수를 줄여가는 방식이다. 80명의 성인들이 머리 위로 손을 치켜들며 결과에 따라 함성을 지르고 아쉬워하는 모습은 핑 마니아 오픈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용인=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