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산업계 전반을 뒤흔들고 있는 인공지능(AI)은 올해 유럽종양학회(ESMO)에서도 가장 큰 화두였다. 신약 개발에 폭넓게 쓰이고 있는 AI가 암 발병 위험이 높은 사람을 콕 집어내 조기에 예방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다.
18일(현지시간) 로슈그룹 제넨텍은 고위험 근침윤성 방광암 환자 중 수술 후에도 혈액에서 미세잔존질환(MRD) 징후가 발견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3상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임상의 특징은 순환종양핵산(ctDNA) 분석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ctDNA는 혈액에 떠다니는 암세포 유래 DNA 조각으로 액체 생검의 핵심 지표다. MRD는 맨눈으로 판별하기 어려워 AI를 활용해 찾는다. 제넨텍은 AI 기반 분석을 통해 재발 위험이 높은 환자만 선별적으로 치료에 집중했다. 그 결과 재발 위험이 낮은 환자에 대한 불필요한 고가 치료를 피하면서도 무질병생존기간(DFS) 및 전체 생존기간(OS)의 유의미한 개선을 끌어냈다.
AI는 기존 면역항암제의 혜택을 극대화하는 핵심 도구로도 부상했다. MSD는 디지털 병리학을 활용해 환자의 치료 반응을 예측하고 바이오마커를 정교하게 발굴하는 데 초점을 맞춘 데이터를 발표했다. 디지털 병리학은 현미경 슬라이드 이미지를 AI가 분석해 수많은 패턴과 특징을 파악하는 기술이다. AI는 사람이 놓치기 쉬운 미세한 바이오마커를 식별한다. 토니 슈에리 ESMO 과학 분야 공동의장은 지난 17일 기자간담회에서 “AI가 수십만 개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데이터가 부족하다’ ‘바이오마커가 적다’는 불평을 할 수는 없다”며 “임상시험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선 AI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ESMO는 의료계와 바이오산업 전반에서 AI가 활용되는 데 대한 대응에 나섰다. 파브리스 앙드레 ESMO 회장은 “임상 현장에서 대규모언어모델(LLM)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을 담은 AI 활용 가이드라인 프레임워크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베를린=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