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디자이너를 없앴더니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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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 디자이너는 어떤 모습일까요?

한번 쯤 이런 생각 해보지 않으셨나요? UI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지거나, 로봇이 모든 일을 대신하는 날이 오면, 디자이너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저도 같은 고민을 하다가 반대로 생각해 보기로 했어요. 언젠가 사라질 운명이라면, 차라리 그 미래를 앞당겨서 직접 경험해보기로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래서 조금 파격적인 목표를 세웠어요.

바로 ‘디자이너 없애기’

제가 팀에서 빠지더라도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어보는 실험이었어요.

어떻게 했을까요?

하나, 반복되는 작업을 '규칙'으로 정의하기

저는 제휴를 맺은 회사들과 돈을 주고받는 정산 업무를 맡고 있는 팀에 있었어요. 문제는, 회사마다 수수료 계산 방식이 모두 달라서 매번 비슷한 일을 반복해야 했다는 거예요. 팀 인원이 아무리 많아도 일손이 부족한 구조였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매번 다른 방법으로 하지 말고, 공통된 규칙을 찾아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어떤 제휴사는 사용자가 토스를 통해 대출을 많이 받으면 더 많은 수수료를 지급하고, 덜 이용하면 적은 수수료를 주는 구조였어요. 이런 유사한 계약들을 묶어 ‘구간별 수수료율’이라는 하나의 규칙으로 정리했더니, 여러 회사의 정산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어요.

이런 식으로 복잡한 계약들을 표 하나로 정리하면서, 매번 새로 디자인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 가 만들어졌어요. 이 시스템이 없었다면 지금도 저는 비슷한 화면 수백 장을 계속 만들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둘, 규칙을 시스템화 하기

규칙을 만든지 반년쯤 지난 어느 날,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어요.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저 없이도 UI를 만들고 있는 거예요.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개발자이기도 했지만, 디자이너 없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작은 성공의 신호였던 것 같아요. 물론 제가 디자인하는 시간도 매우 줄어들었고요.

제가 생각한 다음 단계는 스펙을 작성하는 것조차 없애는 것이었어요. 보통 디자인하기 전에 제품의 요구조건 문서를 만들잖아요. 이것도 시스템화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정산 서비스를 요청하는 임직원이 몇 가지 설문에만 답하면 그 정보를 토대로 UI가 자동 생성되도록 매핑 시스템을 만들었죠. 완전히 자동화되진 않았지만, 어시스턴트 디자이너 혼자 작업할 수 있을 만큼은 되더라고요.

이쯤 되니 진짜로 ‘디자이너를 없앤다’는 실험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셋, 시스템을 AI 한테 맡기기

누구나 디자인할 수 시스템을 갖추고 나니, ‘이 시스템을 돌리는 주체가 꼭 사람이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AI가 MCP(Model Context Protocol - AI와 제품이 소통할 수 있는 표준화된 소통 체계)를 통해 디자인 툴을 다루는 시대잖아요. 게다가 토스에서는 직접 디자인툴을 만들어 사용하기 때문에 어떠한 제약도 없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어요.

아직은 바로 사용할 만한 수준의 화면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괜찮은 시스템이 정의되어 있다면 AI는 꽤 준수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 사람은 모두 시스템을 만들고, AI가 그 시스템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디자이너, 이제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

처음엔 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잘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든다는 게 두렵기도 했어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게 해보니까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더 본질적이고 가치 있는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이제는 누구나 UI를 만들 수 있는 시대예요. 우리가 지금 ‘UX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일도 머지않아 버튼 하나 그리는 것처럼 간단한 작업이 될지도 몰라요. 디자이너가 오랜 시간 고민하던 일들도 더 이상 우리의 고유 영역이 아닐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디자이너의 역할은 직접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나보다 더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도록 원칙과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즉, 하나의 일을 잘 해내는 사람보다,누구라도 제품을 만들 수 있게 틀을 만들 수 있게, ‘시스템적 사고’를 갖춘 디자이너가 필요한 시대가 오고 있는 거예요.

조직의 러닝이 순환되는 구조 만들기

이건 저의 사례일 뿐이고, 토스엔 이런 경험을 하고 있는 동료들이 많아요. 이런 노하우를 서로 빠르게 공유하고, 챕터 차원에서 러닝이 축적되는 조직을 만들고 싶었어요.

예전에 저는 ‘그룹 권한’ 기능 없이 제품을 설계했다가, 나중에 꼭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서 서버 구조까지 갈아엎는 큰 비용을 치른 적이 있어요. 당시엔 초기 제품이라 단순하게 시작하고 싶었고, 필요 없을 거라 판단했었거든요. 돌아보면, 제가 토스 안의 더 고도화된 계정 체계를 알고만 있었더라도 ‘그룹 권한’은 반드시 필요해질 기능이라는 걸 미리 예측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이런 노하우를 더 빠르게 습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계정 권한 같은 구조를 직접 설계해본 디자이너는 많지 않잖아요. 디자이너는 예상보다 자주, 처음 해보는 구조나 흐름을 직접 정의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돼요. 데이터 CRUD(Create, Read, Update, Delete)는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는 게 최선일지, 앱 미리보기는 어디에, 어떻게 노출하는 게 좋을지 등도 그렇죠. 그래서 저는 이런 러닝들이 잘 축적되고 공유되는 조직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제는 작은 단위의 디자인 시스템을 넘어, 챕터 전체가 중요한 의사결정이나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UX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통해 우리 각자의 러닝이 단순히 공유되는 것을 넘어서, 계속 누적되어 성장하는 사이클을 만드는 것이 올해의 목표예요.

토스가 툴을 직접 만드는 이유

이런 시스템을 잘 구축하려면, 비슷한 고민과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제품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 꼭 필요해요. 토스는 구성원 모두가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도록,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 딱 맞는 각종 툴을 직접 만들고 있어요. 어떤 툴을 쓰느냐는 곧 우리의 일하는 방식과 생산성을 좌우하니까요. 게다가 토스는 금융 기업이라 고객 데이터를 외부에 맡길 수 없는 환경적인 제약도 있어요. 이런 이유들로 자연스럽게 내부에서 필요한 툴을 직접 개발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고, 이 툴들은 전담 역할인 Product Designer (Tools)가 만들고 있어요.

만드는 툴의 범위도 정말 상상 이상인데요. 데이터 분석 툴, 디자인 툴 리스크 모니터링 툴, 검토 프로세스 툴, 상담 관리 툴, 광고 관리 툴, 쇼핑 상품 관리 툴, 정산 툴, 컴플라이언스 툴, 업무 자동화 툴, 리서치 자동화 툴 등 생산성 툴만 수십가지가 있으며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가끔은 솔직히 ‘다른 회사처럼 SaaS 툴 사서 쓰면 편할텐데’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 많은 기능을 새로 다 만드는 게 엄청 챌린징하거든요. 근데 이런 환경 덕분에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 맞게 최적화할 수 있고, 필요한 기능은 빠르게 구현할 수도 있어요. 덕분에 디자이너들은 더 생산성이 높아져 이전엔 한 명이 하지 못했을 더 큰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마치며

이미 토스에서는 AI가 디자인한 화면이 실제 제품에 쓰이기 시작했어요. 아직은 디자이너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조만간 디자이너 없이도 충분히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날이 오겠죠.

그렇게 되면 우리의 역할은 분명 달라질 거예요. 디자인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더 뛰어난 디자인을 만들도록 원칙과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거죠.

여러분은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하지 않는 시대'에 어떻게 가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나요?

AI가 모두 대신할 때, 디자이너로서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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