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시장이 다시 과거로 향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각기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들이 잇따라 제작·공개되며 '시대극 르네상스'가 펼쳐지고 있다. OTT 플랫폼은 물론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까지 레트로 감성의 작품들이 포진했다. 세대 간 공감과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과거의 이야기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오는 17일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납치된 여객기를 착륙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섹션과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공식 초청된 이 작품은 실화 기반 사건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했다.
변성현 감독은 '굿뉴스'를 통해 사상 초유의 하이재킹 사건 자체보다 그 이후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다양한 인물들이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풍자와 아이러니, 반전과 위트가 절묘하게 맞물린다. 특히 국가 기관과 언론, 관제탑, 중앙정보부 등 각기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긴박한 리듬 속에 펼쳐진다.
1970년대의 질감과 분위기를 구현한 미술 역시 압권이다. 미술감독 한아름은 당시 실제 사용된 여객기 기종의 폐비행기를 구입해 세트를 조성했고, 공항과 사무실 등 주요 공간에 당시 색채와 소품을 재현했다. 변 감독과 꾸준히 호흡을 맞춰온 한 감독은 "리얼리티를 넘어 '시간의 질감'을 살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굿뉴스'는 장르적 쾌감과 사회적 풍자를 동시에 담은, 시대극의 미학을 새롭게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1일 첫 방송되는 tvN 새 토일드라마 '태풍상사'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배경으로 한다. 직원도, 돈도, 팔 것도 없는 무역회사 사장이 된 초짜 영업맨 강태풍(이준호 분)이 절망의 시대 속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작품은 시대적 고증과 인간적인 온기를 결합한 '리얼 휴먼 시대극'을 표방한다. 연출을 맡은 이나정 감독은 "1997년 당시를 진정성 있게 재현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정체성이라 생각했다"며 실제 상사맨들의 취재, 텔렉스(전신타자기) 등 소품 공수, 압구정과 을지로 등 공간 재현에 공을 들였다.
극본을 맡은 장현 작가는 "영업사원 이야기를 구상하던 중, IT 기업의 영업사원으로 일했을 당시 선배님들이 휴대폰 없던 시절의 영업 무용담을 들려줬던 기억이 떠올랐는데 그게 참 재미있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해보자, 그렇게 취재와 공부를 통해 대본을 준비하며 '태풍상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시대를 담는 방식에 대해 그는 "시대 고증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에서도 온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었던 따뜻한 온도, '정' 말이다. 집에 열쇠가 없으면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던 옆집이나 아랫집, 버스에 타면 말없이 내 짐가방을 훅 가져갔던 아주머니, 지하철에서 다 본 신문을 접어 건네주던 손길 등 그 사람들 사이에 흐르던 온기가 내가 생각한 그 시대의 디테일이었다"고 설명했다.
'태풍상사'의 주제에 대해 장 작가는 "IMF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지만 절망이나 슬픔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오히려 희망과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의 주인공이 비극적인 순간에서도 작은 낭만을 찾아내듯, 시청자분들의 피곤한 하루 끝에서 '태풍상사'가 작은 휴식이 되어드렸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태풍상사'는 1997년이라는 특정한 시공간을 통해 지금의 현실을 비추는 이야기로 완성된다. 'Y2K 리얼 직캠' 같은 미장센과 음악, 세대 간 공감을 잇는 정서가 어우러지며 방영 전부터 '공감 완판 드라마'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JTBC 드라마 '백번의 추억'은 요즘 세대에게는 낯선 직업, 버스 안내양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김다미와 신예은이 각각 대학 진학의 꿈을 품은 안내양 '영례',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종희'로 출연해 1980년대의 순수한 청춘과 첫사랑을 그린다.
제작진은 당시 운행하던 100번 버스를 복원했고, 토큰·회수권·교복 등 세밀한 소품까지 재현했다. 김상호 PD는 "요즘은 문자로 쉽게 연락하지만, 1980년대에는 모든 감정이 더 느리고 진심으로 전달됐다"며 "그 시절의 풋풋함을 화면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예은은 "촬영장에 가면 간판, 길거리 음식, 카세트테이프까지 다 80년대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백번의 추억'은 단순한 복고극이 아니라, 사라진 직업을 통해 그 시대 여성들의 현실과 꿈을 담아내며 세대 간 감성 교류를 시도한다.
K-콘텐츠의 본격적인 시대물 열풍은 tvN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시작됐다.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88'은 각 시대의 음악, 패션, 가족 문화, 팬덤을 사실적으로 복원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응답하라 1988'은 당시 공동체적 정서와 가족애를 통해 세대 불문 공감을 이끌었다. H.O.T.와 젝스키스 팬덤, 삐삐와 PC통신, 만화방 등 90년대 문화 아이콘들은 이후 콘텐츠 전반에서 레트로 미학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공개된 이하늬 주연의 시리즈 '애마'는 1980년대 한국을 강타한 에로영화 '애마부인'의 탄생 배경을 모티브로 한다. 톱스타 희란과 신인 배우 주애가 충무로의 화려함 뒤 어두운 현실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제작진은 당시 영화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세트와 의상, 음악으로 주목받았다. 이하늬는 서울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하며 1980년대 여배우의 화법과 제스처를 재현했다. 시청자들은 "그 시절 충무로의 공기가 느껴진다"며 호평했다.
이처럼 시대극들이 연이어 제작·흥행에 성공하며 콘텐츠 시장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은 상황이다. 산업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세대 간 공감대를 넓히는 동시에, 새로운 문화 소비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젊은 세대에게 70~90년대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시대지만, 부모 세대의 추억담이나 당시 음악, SNS 밈(meme) 등을 통해 간접적인 향수가 형성돼 있다.
1970~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의 부활을 단순한 레트로 유행이 아닌 사회적 피로감 속 정서적 안식과 세대 공감의 결합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살아보지 않은 시대지만 익숙하게 느껴지는 과거가 새로운 정체성 탐색의 통로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OTT 플랫폼 확산으로 해외 시청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응답하라' 시리즈 처럼 특정 연도를 전면에 내세운 한국 시대극은 미국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와 같은 외국 복고 콘텐츠와도 정서적으로 맞닿아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한국의 과거를 하나의 문화 코드로 소비하는 흐름이 확산 중이다.
패션·음악·공간 디자인 등에서도 레트로 감성은 단순 재현을 넘어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잡았다. 과거를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며 시청자에게 시각적·정서적 신선함을 제공한다. 업계 관계자는 "현실의 불안과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공동체적 온기와 안정의 상징으로 과거를 찾는다"고 말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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