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경기 여주 페럼클럽(파72) 18번홀(파5). 마지막 홀까지 이어진 ‘메디힐 자매’ 박현경(25)과 이채은(26)의 팽팽한 승부는 실수 하나로 갈렸다. 공동 선두로 나선 이채은이 페어웨이에서 약 295야드 남기고 친 세컨드샷이 왼쪽으로 크게 꺾여 페널티 구역으로 향했다. 1벌타를 받고 드롭한 뒤 플레이를 이어간 이채은은 5온1퍼트로 보기를 적었다.
박현경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침착하게 세 번째 샷으로 그린에 공을 올린 뒤 2퍼트로 마무리해 길고 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시즌 첫 번째 우승이자 지난해 6월 맥콜·모나 용평오픈 이후 11개월 만에 통산 8승째를 올린 박현경은 파퍼트로 우승을 확정한 뒤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고, 캐디인 아버지 박세수 씨(56)와 기쁨의 포옹을 나눴다.
◇시즌 첫 승·통산 8승…다시 박현경 시대
박현경은 이날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E1 채리티오픈(총상금 10억원) 최종 3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이글 1개와 버디 4개를 몰아쳐 6언더파 66타를 쳤다. 최종 합계 16언더파 200타를 적어낸 박현경은 이채은(15언더파 201타)을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사흘 연속 보기를 단 한 개도 범하지 않은 KLPGA투어 역대 12번째 노보기 우승 기록이다.
1타 차 단독 2위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박현경이 마지막 날 6타를 줄이며 승부를 뒤집었다. 특히 9번홀(파5)에선 약 28m 거리의 환상적인 칩인 이글을 터뜨리며 기세를 높였다. 막판 이채은이 무섭게 추격했으나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으며 끝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박현경은 지난해 BC카드·한경레이디스컵을 포함해 3승을 쓸어 담으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100% 만족한 시즌은 아니었다. 공동 다승왕을 수상했지만 선수로서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대상과 상금왕 부문에선 2위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는 반드시 대상을 타겠다고 다짐했다.
박현경이 이번 우승으로 다시 ‘박현경 시대’를 열 준비를 마쳤다. 상금 1억8000만원을 더해 상금랭킹은 16계단 오른 6위(2억8443만원)가 됐다. 대상 포인트 순위는 홍정민과 함께 공동 3위(206점)다. 박현경은 “경기력이 조금씩 올라온다는 생각으로 했는데, 이번 대회에서 프로 첫 노보기 플레이 우승을 해 너무 기쁘다”며 “상반기 대회에서 첫 승을 올린 만큼 올해도 작년처럼 시즌 3승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현경은 이번 대회가 자선기금 모금 등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가는 대회인 만큼 당초 상금의 13%를 기부하기로 했는데 우승 확정 후 상금 전액을 기부한다고 밝혔다.
◇메디힐 골프단, 벌써 4승 합작
메디힐 골프단은 3주 연속 우승을 내달렸다. 최근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과 두산 매치플레이에서 2주 연속 우승을 차지한 이예원에 이어 박현경이 이번 대회 정상에 올랐다. 아울러 올 시즌 9개 대회에서 가장 많은 우승(4회)을 차지하며 최강 구단의 입지를 다졌다.
메디힐은 올해 초 KLPGA투어 스토브리그 최대어로 꼽힌 이예원과 박현경을 모두 영입했고, 지난해 3승을 쓸어 담은 배소현과 통산 2승을 자랑하는 한진선까지 데려와 시즌 전부터 크게 주목받았다. 당초 박보겸, 유현조, 고지우, 마다솜 등을 거느린 삼천리 골프단과의 경쟁 구도가 예상됐지만 메디힐이 빠르게 4승을 쌓으며 초반 분위기를 압도했다.
메디힐 소속이자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나선 배소현은 이날 4타를 줄인 끝에 공동 8위(9언더파)로 대회를 마쳤다. 시즌 첫 톱10 진입이다. 시즌 최다승(3승)을 기록 중인 이예원은 전날 커트 탈락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