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만에 돌아온 지니 "피 끓던 X세대의 응원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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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우스' 신성우·공일오비 장호일 주축…절친 노바소닉 김영석 합류

신성우 "오랜만의 녹음에 벌거벗은 느낌도…둘째 아이 보고 제목 '거북이' 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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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지니

[지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위로와 응원을 건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면 좋겠다 싶었죠." (신성우)

한국 대중문화의 '르네상스'로 불리던 지난 1995년, '테리우스' 신성우과 공일오비의 장호일이 결성한 프로젝트 밴드 '지니'(Geenie)는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과 쾌감을 안겼다.

대표곡 '뭐야 이건'의 질주하는 듯한 호쾌한 기타 사운드, "언제까지나 어린 날의 나의 꿈을 찾아가는 거야"라는 개성 강한 가사, 그리고 장발 신성우의 카리스마는 30년이 지나도록 음악 팬들 사이에 '전설의 프로젝트 밴드'로 회자했다.

1997년 2집 '엘리펀트'를 끝으로 활동을 멈춘 지니가 오랜 침묵을 깨고 28년 만에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긴 동면 뒤 깨어나 위기에 빠진 시민을 구해내는 '캡틴 아메리카'처럼, 지니는 이제는 중·장년이 돼 열심히 살아가는 팬들을 향해 재치 있는 위로와 응원을 건넸다.

최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지니의 신성우(보컬)·장호일(기타), 그리고 이번에 합류한 노바소닉의 김영석(베이스)을 만나 인터뷰했다.

신성우는 "(30년 전) 과거에는 젊고 피가 끓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기에, 무언가가 별로면 별로라고 외쳤다"며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등 힘든 시기를 거친 지금, 우리가 굳이 논쟁거리를 던지거나 저항의 메시지를 내는 것은 아니다 싶었다. 그 대신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내면 괜찮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발매된 신보에는 지니 특유의 밝고 경쾌한 록 스타일의 타이틀곡 '거북이'와 강렬한 정통 하드록 사운드의 '로그' 두 곡이 수록됐다.

지니는 타이틀곡에서 '하늘을 나는 거북이'라는 참신한 소재를 꺼내 "지금 네가 걸어가는 이 길 쉽지는 않아도 / 굳이 빨리 걸으려고 하지마 흔들리지마"라고 듣는 이를 다독였다. 긴 장발과 잘 어울리는 부리부리한 눈매가 녹슬지 않은 신성우의 카리스마도 여전했다.

김영석은 "내가 지니 재결합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며 "신성우와 장호일은 지니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몇 년간 마음속에만 담아 두고 있었다"고 다시 의기투합한 계기를 들려줬다.

"사석에서 신성우가 '그것만이 내 세상'을 노래하는 걸 들었는데, 정말 한이 맺힌 듯 부르더라고요. 저 감성을 이때까지 숨기고 안 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답답했습니다. 차라리 음악을 다시 하자, 다시 할 거면 같이 하자, 그 전부터 장호일과 이야기는 있었으니 지니를 같이 하자.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됐지요." (김영석)

작년 10∼11월 지니 재결합을 진지하게 얘기한 뒤 일사천리로 작업했다. 신성우는 1990년대 '내일을 향해', '서시', '사랑한 후에' 등의 히트곡을 쏟아내며 톱스타로 활약했지만, 2006년 베스트 앨범 이후로는 소수의 OST와 프로젝트성 음원 발매를 제외하고는 주로 뮤지컬 무대에서 팬들을 만나왔다.

가수 복귀가 오래 걸린 이유에 대해 신성우는 "뮤지컬을 하다 보면 다음 연도는 물론 약 3년 뒤까지 스케줄이 잡힌다"며 "차기작 역할을 준비하다 보면 빈 일정이 일 년에 한 달 혹은 보름밖에 남지 않는다. 핑계라고 하면 핑계 같지만, 공연하다 보니 이처럼 밀리고 밀려서 여기까지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장호일과 김영석이 이 점을 잘 파악한 것 같다"며 "이번 지니 컴백을 위해 '곡 납품 날짜'까지 맞춰서 지정했더라. 때때로 '곡 아직 안 썼느냐'고 물어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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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주년이던 지난 2022년에는 너무나 가수로 복귀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그냥 넘어가야 해서 아쉬웠죠. 시간이 흐를수록 복귀가 더욱 어려울 것 같았거든요. 젊었을 때 무대 영상을 틀면 아이들이 '저거 아빠 아니다'라고까지 하더라고요. 하하." (신성우)

신성우는 "오랜만에 녹음실에 들어가니 벌거벗고 노래하는 느낌이었다. 녹음 장비 자체도 많이 변했더라"며 "관객을 앞에 둔 뮤지컬이라고 생각하고 노래했다. 예전처럼 '스트레이트한' 느낌을 많이 주려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신곡의 작사에 깊게 관여했다. '하늘을 나는 거북이'라는 소재는 변신 로봇 놀이를 하며 기어 다니던 그의 둘째 아들을 보고 착안했다.

신성우는 "35개월 된 둘째 아들이 기어 다니면서 노는 것을 보고 느리게 걸어가는 우리네 모습이 떠올랐다"며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도 '진심으로 노래하는 시간이 365일이 되면 그때 노래가 인생의 깨달음을 줄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 시간을 채우기까지는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가야 한다고 말이다. 이 또한 거북이와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처음 뭉쳤던 30년 전 1995년은 공일오비, 넥스트, 서태지와아이들, 김건모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다양한 장르에서 인기를 누리며 대중음악이 꽃 피우던 시기다. X세대로 대표되는 이들 스타는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개성을 강조했다는 공통 분모가 있다. 지니가 불만 가득한 톤으로 세상에 "뭐야 이건"이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시대 흐름과 맞닿아 있었다.

장호일은 "우리나 공일오비가 X세대의 아이콘으로 '가요계의 르네상스'라던 1990년대 그 당시에 활약할 수 있던 것은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려는 문화가 폭발했기 때문"이라며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남들과 다른 것을 하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당시 광고의 주된 카피도 '나는 나야'일 정도로 개성을 중요시했기에, 다양한 문화가 폭발적으로 나왔다"고 짚었다.

그는 "실제로 당시에는 음반 사전 심의 등 불합리한 점도 있었기에 X세대의 의식이 각성한 측면도 있다"며 "요즘 세대는 남들과 다르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X세대는 반대로 남들과 같으면 싫어했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 '가요톱텐'에 출연하던 이들은 지니 재결합 후 최근 MBC TV 음악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에 출연해 신곡 두 곡을 선보였다. 시원시원한 가창에 힘 있는 무대 매너 등 K팝 아이돌과는 또 다른 매력에 팬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과거 김영석과 함께 음악을 하던 '쇼! 음악중심' 제작진이 이들에게 제안해 출연이 성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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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우는 "옛날에 '순위 프로'는 안 하겠다고 작정했는데, '아이돌 컴백'마냥 돌아오게 됐다"며 "처음에 '쇼! 음악중심'에 나간다길래 농담인 줄 알았다. 오랜만에 무대에 서니 낯설기도 하더라. 무척 떨렸다"고 소회를 밝혔다.

지니는 앞으로 꾸준히 수개월에 한 번씩 신곡을 내고, 연내 단독 콘서트를 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단독 콘서트를 열게 된다면 어느 정도 규모로 열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숱한 솔로 히트곡을 보유한 신성우, '아주 오래된 연인들'·'슬픈 인연' 등 1990년대 많은 인기곡을 배출한 공일오비의 장호일, 에메랄드 캐슬의 히트곡 '발걸음'을 작곡한 김영석이 여는 콘서트라면 세트리스트 만큼은 그 어느 공연보다 풍성할 터였다.

"히트곡이 하나뿐이라면 그 곡은 맨 마지막에 와야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지니 말고도 솔로나 공일오비의 히트곡 등 대중이 아는 수많은 노래로 공연을 채울 수 있어요. 그래서 이 팀의 공연이 기대가 됩니다." (김영석)

tsl@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5월05일 12시1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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