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번홀의 기적…그레이스 김 '이글·이글 대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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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오리 핀을 모자에 단 그레이스 김이 지난 13일 프랑스 아문디에비앙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호주 국기를 몸에 두르고 미소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노란 오리 핀을 모자에 단 그레이스 김이 지난 13일 프랑스 아문디에비앙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호주 국기를 몸에 두르고 미소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사실 처음 사흘 동안 핀을 꽂는 걸 깜빡했습니다. 마지막 날 티오프 직전에야 기억이 났죠. 제가 떠올렸다는 게 정말 기뻤어요.”

지난 13일 프랑스 에비앙레뱅의 에비앙리조트골프클럽(파71)에서 열린 여자골프 시즌 네 번째 메이저대회 아문디에비앙챔피언십(우승상금 120만달러) 우승 기자회견에서 그레이스 김(호주)은 모자에 꽂힌 ‘노란 오리 핀’을 손으로 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그레이스 김의 노란 오리 핀은 행운의 부적이 됐다. 이날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잇단 행운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지노 티띠꾼(태국)에게 2타 뒤진 공동 3위로 18번홀에 들어선 그레이스 김은 이글 퍼트를 떨어뜨려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티띠꾼이 이 홀에서 파를 지키면서 최종 합계 14언더파 270타로 동타가 됐다.

행운은 연장에서도 계속됐다. 같은 홀에서 펼쳐진 1차 연장에서 그레이스 김의 두 번째 샷이 카트 도로에 맞고 그린 앞 연못에 빠졌다. 1벌타를 받은 뒤 드롭존에서 친 샷이 그대로 홀로 빨려 들어가는 행운의 칩인 버디로 이어졌다. 그레이스 김은 이어진 2차 연장에서 약 3m 거리 이글퍼트를 넣고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그레이스 김에게 행운을 가져다준 노란 오리 핀의 공식 명칭은 ‘루크 더 덕’이다. 루크(leuk)는 백혈병(leukemia)을 의미하며 노란 오리 캐릭터는 호주 소아암 환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스코트다.

골프계에선 2018년 백혈병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호주 출신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선수인 재러드 라일을 기리는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라일은 17세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지만 이를 이겨내고 PGA투어에 진출해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줬다. 그는 생전에 루크 더 덕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백혈병 인식 개선과 기금 모금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레이스 김은 우승 직후 “나는 라일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가 남긴 정신과 유산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계 이민자 2세인 그레이스 김은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성장한 선수다. 작은 청소 사업을 하던 아버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며 교대 시간을 이용해 딸을 시드니 전역의 골프연습장에 데려다줬다고 한다. 부모의 헌신을 알고 난 뒤 더 열심히 연습했다는 그레이스 김은 호주 골프의 전설 카리 웹이 운영하는 재단의 장학생으로 발탁된 뒤 국제적인 선수로 발돋움했다.

그레이스 김은 평소에도 자신이 받은 도움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노란 오리 핀도 자신이 받은 후원을 다시 세상에 돌려주는 실천의 일환이다.

2023년 4월 롯데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그레이스 김은 2년3개월 만에 LPGA투어 2승째를 메이저 우승으로 장식했다. 그레이스 김은 잰 스티븐슨, 카리 웹, 해나 그린, 이민지에 이어 호주 출신으로는 다섯 번째 메이저 퀸에 이름을 올렸다. “노란 오리 핀을 달고 호주 골프 역사를 쓴 그를 보며 하늘의 19번홀에서 한 남자가 미소 짓고 있었을 것이다.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호주 매체 코드스포츠는 그레이스 김이 새로운 역사를 쓴 우승 장면을 이렇게 표현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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