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담배회사들이 수조 원대의 매출을 기록하며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흡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KT&G는 2024년 기준 5조9095억 원의 매출과 1조184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한국필립모리스(PMK)도 2023년 기준 7900억 원의 매출과 105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흡연 관련 질환으로 인한 건강보험 지출은 2021년 3조4738억 원에서 2023년 3조8589억 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2019년 기준 담배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12조 1913억 원에 달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의료비뿐만 아니라 생산성 감소, 조기 사망 등 다양한 사회적 손실을 포함한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담배회사들이 수조원대 매출와 이익을 내는 동안 건보는 흡연 관련 질환으로 수 조원대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담배의 건강 피해와 사회적 부담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에서 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흡연자는 폐암, 심혈관 질환,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등 치명적인 질환에 걸릴 확률이 비흡연자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담배가 개인의 건강 문제를 넘어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고 사회 전반에 걸쳐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문제다. 건보 측은 “사회 전체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간접흡연 또한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비흡연자가 흡연자와 같은 공간에서 장기간 노출될 때 심혈관 질환 및 호흡기 질환에 걸릴 확률이 급격히 증가한다. 이러한 피해는 가정, 직장, 공공장소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발생하며, 특히 어린이와 노약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과거 공기업이었던 한국담배인삼공사(현 KT&G)와 다국적 담배회사들은 경쟁 관계 속에서도 규제 대응을 위해 전략적 협력을 이어왔다. 1989년 국내외 담배회사들은 ‘한국담배협회’를 설립하며 공동 대응 기반을 마련했다. 1994년엔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증진법 초안이 발표되자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반대 의견을 제출하기도 했다. 또한 청소년 대상 담배 판매 금지 조항에도 반대하며 담배소매인협회와 흡연자 권리단체를 동원해 규제 약화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 최종 공포된 국민건강증진법에선 담배 경고문 확대 조항이 삭제되고 일부 공공장소에서 흡연이 허용되는 등 대폭 완화된 형태로 시행됐다.
◇흡연 피해 소송에도 전략적 대응
담배회사들은 흡연 피해 소송에도 전략적으로 대응했다. 1999년 국내 최초로 흡연 피해자가 KT&G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자, 다국적 담배회사들은 흡연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논리와 각종 자료를 제공하며 소송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대법원은 흡연이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며, 흡연의 위험성은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식되고 있었다는 이유로 담배회사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과거 담배회사의 ‘라이트 담배’ 마케팅은 소비자를 속인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때 라이트 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이미지를 만들고 판매량도 늘어났지만, 연구 결과 니코틴과 타르 함량 차이가 크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일부 담배 제품에는 니코틴을 더욱 빠르게 뇌로 전달하는 성분이 포함돼 있음에도 이러한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고지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다른 건보 관계자는 “제조물책임법상 제조업자는 제품의 위험성을 명확히 알릴 의무가 있지만, 담배회사들은 최소한의 법적 요구사항만 준수하며 본질적인 위험성을 숨겨왔다”고 지적했다.
◇법적 책임 논란, 새로운 전환점 되나
해외에서는 담배회사의 중독성 강화 설계 및 정보 은폐를 이유로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빈번하다. 미국에서는 1998년 ‘마스터 정산 합의(MSA)’를 통해 담배회사들이 25년간 총 2060억 달러를 배상하도록 한 사례가 있다. 캐나다에서도 흡연 피해자에게 거액의 배상을 명령하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항소심 막바지에 접어들며, 법원의 판단에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건보 관계자는 “법적 책임이 인정될 경우 담배회사들은 사회적 비용 부담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그럴 경우 공중보건을 위한 보다 강력한 규제와 담배 소비 감소를 위한 정책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