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연휴를 앞둔 2일 제주 제주시 용강동 강 선생의 묘역은 한동안 관리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1932년 해녀항일운동 등을 이끌며 독립투쟁을 벌인 그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지만, 묘역을 관리해 줄 후손이 사실상 끊겼다. 고영철 제주 독립운동가 서훈추천위원회 자료발굴위원장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다 목숨까지 잃었지만, 후손이 없다는 이유로 묘소가 방치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추석을 맞아 전 국민이 고향에서 조상 묘소를 벌초하고 성묘하는 가운데 광복 80주년인 올해 후손이 없는 독립운동가의 묘소는 방치되고 있다. 독립운동가 묘소는 전국 각지에 있지만 통계화돼 관리되지 않는데다, 후손이 있을지라도 장기간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정부와 지방자지단체가 전수조사를 통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묘소를 적극 발굴해 관리 및 지원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묘비 깨지고 잡초 무성한 채 방치돼
1일 오전 강원 춘천시 남면 발산리. 이날 50cm 넘게 자란 수풀을 헤집고 찾은 박화지 의병장(미상~1907) 묘소는 잡초로 뒤엉켜있었다. 묘소 옆 팻말에는 후손의 연락처가 적혀있었지만 ‘016’으로 시작하는 옛 번호였다. 박 선생은 1907년 정미의병 당시 의병 소모장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고문 끝에 순국했지만 증거 자료 등이 불충분해 아직 서훈을 받지 못했다. 인근 주민 정모 씨(72)는 “묘역이 그렇게 방치돼 있을 줄 몰랐다”고 했다.

묘역 안내판이 엉뚱한 곳으로 가리키는 곳도 있었다. 충남 아산시 배방읍에 위치한 용곡공원 정상에는 이관구 선생(1885~1953)의 묘가 유일하지만, 등산로 곳곳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이 선생의 묘 위치가 표시돼 있지 않았다. 묘역 방향으로 화살표시가 된 안내판에는 엉뚱하게도 ‘헬스쉼터’라고 표시돼 있었다. 유일한 안내판은 공원 샛길 입구에서 500m가량 떨어진 4차선 도로 옆에 설치돼 있었지만 이마저도 엉터리였다. 해당 안내판에는 ‘애국지사 이관구 선생의 묘소입구 100m→’라고 적혀있었지만, 실제로 100m를 가면 주유소가 나왔다.
●‘무후손’ 독립군 묘소, 통계로도 안 잡혀
문제는 이러한 묘소들을 전국 곳곳에 있지만, 통합적으로 통계화돼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후손이 없는 독립군 묘소를 별도 통계로 관리하고 있지는 않다”며 “다만 매년 실태조사를 통해 합동묘역과 소재지가 확인된 개별 산재 묘소 현황을 관리하고 있으며, 유지 비용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는 후손이 없는 묘소라도 묘소관리자 등의 신청이 있을 경우 연 1회 20만 원의 유지관리비 또는 200만 원 이내의 단장비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묘소관리자 등의 신청에 의지한다는 점에서 발굴되지 않은 독립운동가 묘소는 전국에 방치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올 9월 기준 후손이 없어 훈장을 전수받지 못한 독립유공자는 7648명으로 전체(1만8569명)의 약 41%에 속한다. 후손이 없고 독립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까지 포함한다면 방치된 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방치된 독립군 묘소를 전수조사하는 등 관리하는 한편 독립운동가에 대한 시민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우선 전수조사를 통한 실태 파악을 해야 하고 이후 적극적인 관리의 책임 주체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 국민도 독립운동가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춘천=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제주=송은범 기자 seb1119@donga.com
아산=이정훈 기자 jh8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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