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그날 밤 국회 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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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이 야간에 건물을 장악하려 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조치가 단전이다. 상대의 대응 능력을 떨어뜨리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앞이 깜깜해지고 엘리베이터나 전자식 출입문이 작동을 멈추면 내부 인원들은 당장 이동이 어려워진다. 통신까지 먹통이 된 채로 어둠에 갇힌 사람들은 혼란과 두려움에 빠져 침착하고 조직적인 대응을 하기 힘들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지난해 12월 4일 새벽에도 계엄군에 의한 국회 단전이 이뤄졌다. 그날 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국회 현장을 지휘하던 김현태 707특임단장에게 전기 차단이 가능한지를 물으며 “150명이 넘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들어갈 수 없겠느냐”고 사정하듯 얘기했다고 한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기 10분 전인 0시 50분경의 일이다.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속속 모여들어 의결 정족수 150명을 채워가던 때였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최근 공개한 국회 본관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계엄군이 2층 창문을 깨고 본관에 진입한 게 0시 32분이다. 그 후 18분 뒤 곽 전 사령관의 단전 지시가 있었다. 군인들은 본회의장이 있는 2층을 배회하다 국회 직원들에게 가로막히자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이때가 오전 1시 1분. 계엄 해제안이 통과되던 바로 그 시각이다. 그로부터 5분 뒤 군인들은 지하 1층 전력 차단기를 내렸다. 지하 1층 일부 구역이 5분 넘게 암흑에 잠겼다.

▷그날 계엄 해제 표결은 전자투표로 진행됐다. 전력이 끊기면 투표 시스템도 멈춘다. 만약 계엄군이 투표 완료 전 본회의장 전력을 통제하는 2층 분전함을 찾아냈다면 표결은 중단됐을 수 있다. 수기 투표로 전환하더라도 어둠 속에서 신속히 진행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지하 1층 단전이라고 해서 표결과 무관했던 건 아니다. 당시 의원들 상당수가 의원회관과 국회 본관을 연결하는 지하 1층을 통해 본회의장으로 왔다. 계엄군이 조금만 일찍 해당 연결 통로에 설치된 방화셔터를 내린 뒤 전력을 차단해 못 열게 했다면 의결 정족수를 못 채웠을 가능성이 있다.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다면 단전 단수부터 했을 텐데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던 윤 대통령 측은 단전 사실이 드러나자 “곽 전 사령관이 한 것”이라고 한다. 곽 전 사령관이 “(전기 차단은) 제가 지시한 것”이라고 헌법재판소에 증언한 건 맞다. 하지만 그는 부하에게 단전 지시를 하기 20분 전쯤 윤 대통령으로부터 “아직 의결 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 안에 있는 인원을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단전은 의원들을 끌어내란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취한 기본적인 조치에 해당하는 셈이다. 윤 대통령이 “내가 단전을 지시한 건 아니다”란 말로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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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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